국면 전환에 그대로 사용돼
우 수석 의혹도 유출로 덮일라
난제 맡은 검찰 정공법 택해야 그끄제 끝난 리우 올림픽의 함성이 아직껏 귓전에 남아 있다. 성적만을 따진다면 유도만큼 아쉬움이 큰 종목도 없을 것이다. 양궁, 태권도, 배드민턴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효자종목이었다. 남자 유도팀 선수 7명 중 4명이 세계 랭킹 1위였으니 기대가 컸다. 선수단은 최소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내다봤다. 결과는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유도대표팀이 올림픽에 대비해 전략을 잘못 짠 탓이다. 그동안 선수들 세계 랭킹을 올리는 데에만 주력했다. 선수들을 오픈 대회와 월드컵 대회에 자주 출전시켜 포인트를 쌓았다. 올림픽에서 유리한 시드를 배정받기 위해서였다. 껄끄러운 일본 선수들과 일찍 붙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 결과 선수들 전력이 너무 노출돼 버렸다.
박희준 논설위원 |
상대가 기술을 걸다가 원자세로 되돌아가려 할 때 되받아치는 되치기 기술. 되치기 기술은 무게 이동을 잘못해 중심이 무너질 때 당하기 십상이다. 김원진 선수도 너무 높은 자세로 급히 공격에 들어갔다가 되치기를 당했다.
이 기술이 유도의 세계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다. 얼마 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측이 이석수 특별감찰관에게 일격을 가하면서 사용한 기술이다. 이 감찰관이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이튿날, 청와대는 특정 언론과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국기 문란”이라고 되받아쳤다.
이 감찰관도 우 수석 측의 되치기 역습을 예상했던 것 같다. 청와대 측에 빌미가 된 모 언론사 정보보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이 감찰관)도 저쪽(우 수석)을 보고 있지만 저쪽도 나를 보고 있다… 기술을 부릴 수 있는데 기술을 쓰면 되치기당해!” 그러면서 우 수석 처가의 농지 거래 합의서를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이 감찰관으로선 기술다운 기술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권의 최고 실세라는 민정수석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제대로 감찰할 수 있었을까. 우 수석이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정기관은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 한다”는 이 감찰관 하소연이 모든 걸 얘기해 준다.
당대 최고의 되치기 기술자들과 맞붙은 자체가 불운이었다. 그들은 이 감찰관의 수사기밀 유출 건을, 넥슨과 부동산 거래건에서 비롯된 우 수석 관련 의혹과 거의 같은 비중의 사건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2014년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 수사 때 본 그대로다. ‘7인회’라는 걸 내세워 ‘국정 농단’을 찌라시 문건 유출로 순식간에 바꿔치기했다.
난제 중의 난제를 떠안은 검찰이 딱한 처지다. 살아 있는 사정당국 총괄책임자를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이 감찰관의 감찰내용 유출 건도 함께 조사해야 할 판이다. “국기 문란”이라는 청와대의 성격 규정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검찰 자체가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와 진경준 검사장 구속으로 만신창이 상태다.
검찰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되치기 기술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조력자로 나서는 게 그 하나다. 사문화하다시피 한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 공표죄를 살려내면 된다. 지금껏 어떤 검사에게도 적용하지 않던 조항이다. 여기에 우 수석은 “부르면 가야지만 어차피 ‘모른다, 아니다’밖에 (말할 게)없다”고 공언한 상태이지 않은가.
하지만 무리하게 기술을 쓰려다가는 분노한 여론에 되치기 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정공법만이 검찰이 살길이다. 오히려 검찰의 결기를 보여줄 기회일 수 있다. 국민이 보고자 하는 건 우 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진실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따지고 보면 감찰내용 유출도 이 본질을 파헤치려는 과정에서 파생된 지류일 뿐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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