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의리' 외치다 강제추심 위기… 재산 지킨 비결은?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16-10-01 11:21:46 수정 : 2016-10-01 18:30: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
제주도에 사는 A씨는 직업군인 출신이다. ‘의리’를 중시하는 점에서는 배우 김보성을 능가할 정도다. 주변 사람들은 “신망이 두텁고 좋은 사람”이라며 A씨를 칭찬했지만 부인 B씨는 남의 부탁을 좀체 거절하지 못하는 남편의 넓은 ‘오지랖’이 영 달갑지 않았다.

지난해 기어이 A씨가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군대 시절 만난 전우들의 부탁을 받고 선뜻 채무 보증을 섰다가 변제 미이행으로 그만 본인이 쫄딱 망할 처지가 된 것이다. A씨는 소지한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해 겨우 채무를 갚아 나가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자 급기야 대부업체 C사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A씨는 이런 사실을 B씨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 오랜 기간 군인으로 복무하며 몸에 익은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차마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B씨는 남편이 보증을 선 것은 물론 보증 책임을 지게 돼 대출을 받은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A씨에게 사채를 빌려준 대부업체 C사의 행각은 한층 악랄해졌다. C사는 “가계 긴급자금 명목의 대출이기 때문에 대출을 받은 당사자는 물론 그 배우자도 ‘일상가사대리’의 법리에 따라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원에 A씨와 B씨를 상대로 나란히 지급 명령을 신청했다. 일상가사대리란 법률상 일상적인 가사에 대해 부부 상호 간에 인정되는 대리권을 뜻한다.

A씨는 ‘남자인 내가 어떻게든 혼자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사실도 B씨한테 알리지 않았다. 결국 B씨가 모르는 사이 법원의 지급 명령이 확정됐고 C사는 확정된 지급 명령을 근거로 A씨 부부 소유 부동산에 대한 강제경매를 신청했다. C사는 채권압류와 추심명령 결정도 받아내 B씨가 한 은행 계좌에 갖고 있던 예금 2000만원까지 추심했다.

B씨는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예금이 인출된 사실을 알고 남편을 추궁했다. 그제서야 A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가 친구들과 의리를 지키려다 우리 집안이 망하게 생겼다”고 부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평소 ‘억울한 일을 당한 서민에게 무료로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어 온 B씨는 A씨 손을 붙잡고 함께 대한법률구조공단을 방문했다.

부부의 딱한 사연을 들은 공단 소속 변호사는 법원 판례를 토대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남편이 아내 몰래 대출을 받은 행위는 법률상 인정되는 일상가사대리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A씨와 B씨는 공단 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원에 강제집행 정지 소송 등을 제기해 추심당한 예금 2000만원을 전부 돌려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1일 “엄밀히 말하면 A씨 부부 사례는 불법사금융 피해 사례가 아니지만, 어쩌면 더 지능적이고 진화된 새로운 방식의 불법추심 유형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대부신청서에 자금 용도를 ‘가계자금’이라고만 체크하게 만들면 얼마든지 일상가사대리 법리에 따른 연대채무를 빙자해 대부업체가 채무자의 배우자까지 채권추심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민들이 A씨 부부의 사례를 교훈 삼아 비슷한 불법행위에 현명히 대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