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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반기문의 법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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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7 01:22:16 수정 : 2017-01-17 01: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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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피선거권 없다는 해석 / 유엔 결의 위반이라는 주장 / 다툼 필요없는 법 원칙의 문제 / 정말 ‘아무 문제 없다’ 생각하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0년 만에 환국한 날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장면은 보기 민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전에 익숙한 그가 오랜만에 고국땅을 밟아 낯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했을 리 없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인류의 평화와 약자의 인권 보호, 가난한 나라의 개발, 기후변화 대처, 양성평등을 위해서 지난 10년간 열심히 노력했다”는 글로벌 지도자가 돌아오자마자 맨 처음 한 일이 보여주기식 이벤트였다.

‘서민의 대변자’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던 것 같다. ‘정치교체’를 주장하면서 기성 정치의 구태를 흉내낸 것이다. “지난 50여년간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유엔에서 국가와 민족, 세계 인류를 위해서 일하는 가운데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서민 코스프레’ 같은 가면은 필요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김기홍 논설위원
그에 앞서 분명히 할 게 있다. 자신을 둘러싼 두 가지 논란, 대통령 피선거권과 유엔 결의 위반 여부다. 이것은 법과 원칙의 문제다. 이제 막 국민적 시험대에 오른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구하고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잣대로 삼을 만하다.

공직선거법 제16조는 대통령의 피선거권으로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5년 이상 계속하여 거주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뜻이라면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거주한 반 전 총장은 출마 자격이 없다. 중앙선관위는 피선거권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5년 이상의 기간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국내에 계속 거주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고 유권해석했다. 현재진행형 ‘거주하고 있는’을 과거형인 ‘거주한’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실 이 조항은 우리 말 그대로 읽고 쓰면 되는 국어의 문제이지 법조문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거주하고 있는’은 현재 계속하여 거주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과거에 살았던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법 취지를 따지더라도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이란 내용을 굳이 명시한 이유가 한국 거주 기간이 모두 합쳐 5년에 불과하고 나머지 기간을 외국에서 보낸 사람에게도 대통령 출마 자격을 주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헌법학자를 비롯한 상당수 법전문가들의 의견도 같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선거법에 따르면…” 하면 될 것을 “선거법 등을 종합해 볼 때…” 운운하며 반대 해석을 한 것은 해괴하다. 법의 심판을 구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하다.

다음은 반기문 출마의 유엔 결의 위반 여부다. 1946년 유엔 결의 11호는 “유엔 회원국은 사무총장 퇴임 직후 어떠한 정부직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무총장 자신도 그런 직책을 수락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사무총장의 직위를 국내 정치의 발판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취지다. 강제성과 구속력은 없는 권고사항이다. 유엔 대변인도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저의 어떤 정치적인 행보, 특히 선출직과 관련된 정치 행보를 막는 그런 조항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권고’는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하지 말라는 뜻이다. 반기문 전임 7명은 모두 이 결의를 지켰다.

반 전 총장은 유엔 고별연설에서 ‘유엔 차일드’(a child of the United Nations)를 자처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앞장서 유엔 정신을 존중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유엔의 숭고한 목적과 원칙을 훼손하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반 전 총장에게 왜 이 논란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내거는 공약처럼 대단하고 특별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도면 된다. 박근혜정부를 보고 그런 간절함이 더 커졌다. 그런 세상이 오면 정치교체, 정권교체, 시대교체, 세대교체 같은 것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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