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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진실의 문 앞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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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9 21:49:18 수정 : 2017-01-19 21: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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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에 불만 표출한 대통령
조사에 불응한 본인 책임 커
국민행복 유린한 죄 자청하고
국정농단 전모 소상히 밝혀야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검사팀 조사에 응할 모양이다. 특검에서 요청이 오면 일정을 조율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특검은 늦어도 내달 초순까지는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번 청와대 출입기자 신년간담회에서 특검과 검찰의 수사와 관련해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해보라. 만약 사실관계가 잘못 엮였다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대통령의 책임이 크지 않은가.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은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의 출석 요구까지 번번이 뿌리쳤다. 검찰 수사는 받겠다고 해놓고는 스스로 뒤집었다. 그런 대통령이라면 화를 낼 자격이 없다.


배연국 논설실장
수사의 진행상황이 대통령의 마음에 내키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소환에 응하는 일은 피의자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피의자가 됐든, 참고인이 됐든 수사기관이 부르면 출석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재임 중의 범죄에 한해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특권을 부여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정 수행에 지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법 위에 군림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출석은 국정 수행의 지장과 무관한 만큼 소환에 불응할 이유가 없다.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뽑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의 수족 노릇을 하던 문고리 3인방은 특검의 조사를 받거나 쇠고랑을 찼다. 그의 지시를 묵묵히 수행했던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은 어두운 감옥에서 추운 밤을 지내고 있다. 대통령을 극진히 받들던 ‘왕실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마저 치욕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대통령의 명령을 따랐던 사람은 곤욕을 치르고, 명령을 내린 자신은 아직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누구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대통령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이리저리 죄인처럼 불려 다니는 대기업 수장들은 정말 무슨 죄인가. 이들은 대통령의 강압에 마지못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어디를 도와주라고 하거나 그 누구를 봐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고 되레 억울함을 호소한다. 정작 하소연해야 하는 쪽은 기업이 아닌가. 몽둥이를 든 쪽이 억울하다면 맞은 쪽은 아마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터이다. 글로벌 무대를 누벼야 할 기업인들은 대통령에 엮여 언제 특검의 칼날을 맞을지 모르는 처량한 신세로 변했다. 그 여파로 경제마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추락하는 경제로 신음하는 국민은 또 무슨 죄인가.

박 대통령은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고 그 외에는 다 번뇌”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나라가 번성하고 국민이 행복하다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지독한 번뇌에 빠진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혹시 나라가 잘못 되는 게 아니냐는 깊은 불안감에 싸여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번뇌를 풀어줄 의무가 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전반에 관해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 주권자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권력 실세 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는 일은 국민에 대한 마땅한 도리다. 대통령이 진상을 털어놔야 의혹의 실타래가 풀리고 국정 혼란이 수습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번뇌를 더는 최상의 방책이다.

대통령의 죄는 크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의 행복을 유린한 죄만으로도 이미 무겁다. 죄인의 심정으로 ‘진실의 문’ 앞에 서야 한다. 만약 특검에 출두해서도 ‘거짓의 문’ 앞을 서성인다면 되레 의혹만 키울 뿐이다. 사태 수습은커녕 역사에 오점을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박근혜는 어떤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인가. 아버지 박정희는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딸 박근혜는 어떤 심정으로 역사를 마주하고 있나.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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