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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글의 시대 종언과 새로운 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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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0 23:17:00 수정 : 2017-04-11 12: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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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서 책 읽는 사람들 모습
이젠 아련한 추억 속 장면으로
상상력 매개 새로운 문화 창조
4차 산업혁명 원동력 삼아야
#1.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때 익숙했으나 이제는 볼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글을 읽고 상상력을 발휘해 글로부터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속 이미지를 즐기던 글의 시대가 남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로 바뀐 셈이다. 글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저문 것일까.

#2.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단풍이 찬란한 퀘벡에서 시집을 읽는 남자 주인공. 그는 추상적인 글에서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과 시집 위 글의 교직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깨닫는다. 그 남자 주인공은 드라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려사람’이라서 글과 교감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글은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일까.


전인한 서울시립대 자유융합대학장·영문학
글의 시대는 저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결코 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니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가 # 1과 #2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다. 시, 소설처럼 글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생산물이 지배적이었던 시절은 예전에 지나갔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문자의 발명과 활판인쇄술의 도입은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지식과 문화를 대중에게 대량으로 공급해 근대사회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글이 문화의 총아이던 시절은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획기적인 발달로 옛날이 된 것 또한 사실이기에 글을 다루는 사람들은 옛날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가야 할지, 새로운 시대에 글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고 글과 새로운 문화매체를 적극적으로 연계할 수 있다면, 글이 다시 핵심적인 문화매체가 되는 새로운 글의 시대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대를 열어가는 것을 필자가 응원하자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집단 지성의 발휘가 중요해지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야말로 글이 함양하는 상상력과 창조력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글로 만들어진 문화 생산물을 즐기기가 만만찮은 것은 눈앞에 직접적으로 시각화가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상상력을 통해 만든 머릿속의 심상을 글로 표현해야 하고, 읽는 사람은 또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심상을 만들어야 한다. 시각화된 문화는 소비할 때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남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그대로 소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시각화된 이미지를 즐기는 소비자들은 그 이미지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없기에 그들의 상상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받은 것은 나름대로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는 도화지가 아니라 이미 덧칠할 여지조차 없는 꽉 찬 그림이라고나 할까.

글을 읽는 독자들은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반면, 시각화된 이미지의 관객들은 소비자 역할밖에 할 수 없다. 하나의 각본에서 나올 수 있는 영상이 상상력의 수만큼 다양하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재는 상상력을 발휘해 영상의 바탕이 되는 글을 쓸 수 있고 남이 쓴 글을 상상력으로 나름대로 구체화할 수 있는 인재이다. 이런 인재는 남이 만든 결과물을 피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매개로 남과 능동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현시대 소통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인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글의 시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이 다른 문화 매체와 고립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함양된 서사의 힘과 상상력이 다른 매체의 확고한 기반이 돼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을 폭발시키는 새로운 글의 시대 말이다. 시 읽는 도깨비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시와 각본이라는 글의 폭발이 필요했다는 점을 새삼 되새긴다면 지금이야말로 글의 중요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더욱 강조해야 할 때가 아닐까?

전인한 서울시립대 자유융합대학장·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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