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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척이 느껴진다. 하긴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모레다. 멀리 어디선가 눈석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 아무리 겨울이 길다 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계절의 순환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이런 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떠오르는 꽃이 있다. 매운 계절을 견디고 메마른 가지에서 일찍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이다. 바로 매화(梅花)다. 대개 꽃 향기는 코로 맡지만 ‘귀로 듣는 향기(聞香)’가 바로 매화의 향기다.

왜 향기를 귀로 듣는다고 할까. 매화는 향이 은은해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가다듬어야 비로소 진정한 향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당 서정주 시인은 ‘매화에 봄 사랑이’라는 시에서 “매화 향기에선 가신 님 그린 내음새, 오는 님 그린 내음새”가 난다고 표현했다. 매화는 선비정신을 뜻한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를 옛 선비들이 사랑한 이유가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성,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 꽃봉오리의 정갈한 자태 때문이다. 그래서 매화는 모든 꽃의 맏이라는 뜻에서 화형(花兄)이라고도 불린다. 매화 보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인묵객의 주된 시제(詩題)요, 화제(畵題)였다. 중국 청나라 임고도(林古度)의 시 ‘길상사의 오래된 매화나무(吉祥寺古梅)’를 보자. “한 그루 묵은 매화 밭이랑에 가득하여/ 도성 사람들 잠깐 만에 몰려와 구경하네/ 맑은 꽃 기운 사라지는 줄 모르는데/ 봄 되어도 산 깊어 아직 춥다고만 하네.(一樹古梅花數畝 城中客子乍來看 不知花氣淸相逼 但覺深山春尙寒)”

매화는 문인 등 지식인들이 매우 아꼈다. 매화를 일컫는 말 가운데 ‘빙설옥질(氷雪玉質)’ 혹은 ‘빙기옥골(氷肌玉骨)’이 있다. 얼음과 눈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에, 옥 같이 곧고 고결한 정신을 말한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기 대선 열기,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이은 김정남 암살로 대표되는 북한의 호전성 등 어수선한 세상이다. 남이든 북이든 매화를 사랑하는 선비정신으로 향기 나는 세상이 구현되면 좋겠다. 남녘에서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다. 아, 매향의 고절한 기품이여!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聞香 : ‘귀로 듣는 향기라는 내용으로 매화 향기’를 뜻함.

聞 들을 문, 香 향기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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