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열심히 해서 적당한 때에 정단원,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로 올라왔어요. 제 스스로 납득될 순간에 올라온 것 같아요. ‘왜 안 올려주지’나 ‘아직 한 게 없는데 벌써 올라가지’하는 느낌 없이 차근차근 승급했어요. 하지만 아직 수석무용수로서는 좀 부족한 것 같아요. 부담도 되고.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입단 초기에도 그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었다. 군 문제가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직업 생명이 짧은 발레리노에게 군 복무는 치명적이다. 당시 그는 여름·겨울 3주씩의 휴가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 콩쿠르 입상을 위해 땀을 쏟았고, 다행히 군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너무 힘을 소진해서였는지 슬럼프가 찾아왔다.
“정신 차린 계기가 2013년 ‘오네긴’ 공연인 것 같아요. 렌스키 역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 발탁이 안 됐고 언더스터디(유사시 대역)로 연습에 들어갔죠. 단장님께 ‘저 렌스키 시켜주세요’하고 처음으로 말씀 드렸어요. 저는 그런 식으로 말해온 사람이 아닌데. 그때 많이 느꼈어요. 내가 여기서 멈추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겠구나. 그때부터 다시 재밌어졌어요.”
최근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유니버설발레단 강민우는 “긴장감, 감동, 창피함, 뿌듯함 등 무대에 설 때 엄청 많은 느낌이 있다”며 “공연 중 객석이 깜깜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인사할 때 환해지는 순간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한 건가’하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
“그 시간조차도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계기죠. 당시 안 그랬으면 더 나이 들어 슬럼프를 겪지 않았을까요.”
화려한 외모와 달리 단점을 감추지 않는 진솔함은 강민우의 장점 중 하나다. UBC 문훈숙 단장은 그의 강점으로 “신체 조건, 기량, 점프에서의 남다른 체공시간”과 함께 “겸손함과 끈기, 긍정적 마인드, 관객과 교류하는 법을 잘 아는 것”을 꼽는다. 본인의 단점과 실수만 말한 그에게 장점을 물었다. 한참 생각한 뒤 “모르겠다”고 한 그는 “다 무난하게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턴만 잘 도는 사람, 점프만 잘하는 사람, 특정 동작만 잘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저는 뭐 하나를 버리기 싫어 다 조금씩 연습해왔던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나 동작이 있으면 ‘나 이거 안 해’하는 게 아니라 될 때까지 어떻게든 해보려 했죠.”
한발 한발 꾸준히 올라온 그는 앞으로도 “다 잘해내고 싶다”고 한다. 먼 미래가 아니라 올 한 해를 잘 해내는 게 발레리노로서 그의 목표다.
“(벽을 가리키며) 저 시즌표에 공연들이 적혀 있잖아요. 저걸 차근차근 끝내고 싶어요. 매주, 매달 공연이 있어요. 안 힘들거나 안 아플 수는 없겠지만, 큰 부상 없이 하다 보면 그게 다 내공으로 쌓이고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요. 저 스케줄을 12월 31일 다 끝냈을 때 많은 걸 배웠을 거예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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