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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점프·몸 만들기… 조금씩, 열심히 “슬럼프조차도 나를 키웠다”

입력 : 2017-02-19 21:08:34 수정 : 2017-02-19 21: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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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수석무용수 강민우 발레리노 강민우(28)는 유니버설발레단(UBC)에 2008년 입단했다. 우리 나이로 20살이었다. 약관의 그에게는 화려한 데뷔 대신 고생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에서마저 잘리는 굴욕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엄청 못했다”고 한다. 주역으로 훨훨 나는 지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9년 동안 훌쩍 성장한 강민우가 최근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16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무거워진 어깨 위에 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급 소감은 “좋죠” 한마디로 정리했다.

“조금씩 열심히 해서 적당한 때에 정단원,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로 올라왔어요. 제 스스로 납득될 순간에 올라온 것 같아요. ‘왜 안 올려주지’나 ‘아직 한 게 없는데 벌써 올라가지’하는 느낌 없이 차근차근 승급했어요. 하지만 아직 수석무용수로서는 좀 부족한 것 같아요. 부담도 되고.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번 승급 소식은 지난 한 해를 정신없이 보낸 그에게 선물처럼 날아들었다. 지난해 6월 그는 ‘심청’ 무대에 8회나 서는 강행군을 했다. 10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7회를 공연했다. 벤볼리오와 머큐쇼를 번갈아 연기하니 도무지 헷갈렸다. 그는 “실수해도 티를 안 내야 해 악을 쓰면서 했다”고 한다. ‘호두까기 인형’ 시즌 중간에는 워싱턴 키로프 발레아카데미에서 공연하느라 미국을 다녀왔다. 시차 적응도 못한 채 한국 무대에 오르니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지난해를 되짚는 그에게서 난제를 완수한 후의 충만함이 엿보였다.

입단 초기에도 그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었다. 군 문제가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직업 생명이 짧은 발레리노에게 군 복무는 치명적이다. 당시 그는 여름·겨울 3주씩의 휴가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 콩쿠르 입상을 위해 땀을 쏟았고, 다행히 군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너무 힘을 소진해서였는지 슬럼프가 찾아왔다.

“정신 차린 계기가 2013년 ‘오네긴’ 공연인 것 같아요. 렌스키 역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 발탁이 안 됐고 언더스터디(유사시 대역)로 연습에 들어갔죠. 단장님께 ‘저 렌스키 시켜주세요’하고 처음으로 말씀 드렸어요. 저는 그런 식으로 말해온 사람이 아닌데. 그때 많이 느꼈어요. 내가 여기서 멈추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겠구나. 그때부터 다시 재밌어졌어요.”


최근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유니버설발레단 강민우는 “긴장감, 감동, 창피함, 뿌듯함 등 무대에 설 때 엄청 많은 느낌이 있다”며 “공연 중 객석이 깜깜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인사할 때 환해지는 순간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한 건가’하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극적으로 무대에 섰지만 “잘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는 “리프트가 많은 작품인데 겨우겨우 해냈다”며 “보는 사람도 ‘아우 간신히 했네’ 이럴 정도였다”고 실토했다. 바로 근력운동을 시작하고 체력을 길렀다. 그는 “남자 무용수가 무거워야 여성을 컨트롤하는데 본인이 가벼우면 중심이동할 때 여성에게 딸려간다”며 “당시 60㎏ 정도였는데 꾸준히 운동해서 지금은 72㎏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슬럼프 기간에 대해 물론 후회하지만 아깝거나 다시 살아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시간조차도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계기죠. 당시 안 그랬으면 더 나이 들어 슬럼프를 겪지 않았을까요.”

화려한 외모와 달리 단점을 감추지 않는 진솔함은 강민우의 장점 중 하나다. UBC 문훈숙 단장은 그의 강점으로 “신체 조건, 기량, 점프에서의 남다른 체공시간”과 함께 “겸손함과 끈기, 긍정적 마인드, 관객과 교류하는 법을 잘 아는 것”을 꼽는다. 본인의 단점과 실수만 말한 그에게 장점을 물었다. 한참 생각한 뒤 “모르겠다”고 한 그는 “다 무난하게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턴만 잘 도는 사람, 점프만 잘하는 사람, 특정 동작만 잘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저는 뭐 하나를 버리기 싫어 다 조금씩 연습해왔던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나 동작이 있으면 ‘나 이거 안 해’하는 게 아니라 될 때까지 어떻게든 해보려 했죠.”

한발 한발 꾸준히 올라온 그는 앞으로도 “다 잘해내고 싶다”고 한다. 먼 미래가 아니라 올 한 해를 잘 해내는 게 발레리노로서 그의 목표다.

“(벽을 가리키며) 저 시즌표에 공연들이 적혀 있잖아요. 저걸 차근차근 끝내고 싶어요. 매주, 매달 공연이 있어요. 안 힘들거나 안 아플 수는 없겠지만, 큰 부상 없이 하다 보면 그게 다 내공으로 쌓이고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요. 저 스케줄을 12월 31일 다 끝냈을 때 많은 걸 배웠을 거예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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