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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빠르고 편리함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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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9 22:28:50 수정 : 2017-04-11 13: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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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진짜 빠르고 편해.” 영국에서 유학을 했던 한 지인은 시청에 민원 서류를 신청했다가 ‘빠르면 3주 정도 걸릴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절망했던 기억을 털어놨다. 몇달간 ‘선진 문화’에 감탄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동사무소에서 바로 서류 발급이 가능한 한국이 떠올랐단다. 그는 “그때만큼 한국이 그리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체성 중 하나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결과를 뽑아내는 효율성은 한국 사회의 덕목이 된 지 오래다. 나 역시 어디서든 일처리가 늦어지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답답한 마음이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연 이 ‘효율성’이 정말 비효율보다 앞서는 가치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김유나 사회2부 기자
얼마 전 평일에 쉬게 돼 오랜만에 은행에 갔는데, 창구 하나는 ‘식사 중’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대개 점심시간에 사람이 몰리다 보니 조금 늦게 밥을 먹으러 간 듯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직원이 자리를 비운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렇게 바쁜데 밥을 먹으러 갔냐”며 투덜거리거나 청원경찰을 붙잡고 “왜 직원이 이 시간까지 밥을 먹냐”며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식사를 마쳤는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직원이 창구에 앉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내 순서가 돼 다가가자 그는 대뜸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은 없었다. 그가 실수를 하거나 게으름을 피워서 대기시간이 길어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처리가 늦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밥을 먹고 왔을 뿐인 그는 죄인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기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살피는 그의 얼굴은 매우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지난달 보건복지부에서 한 공무원이 일요일에 출근했다가 심장마비로 숨지자 ‘과로’가 사회의 화두가 됐다. 직원을 늘려 맡은 일을 줄여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당장 사람을 늘린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과로가 일상화한 사회는 단순히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명에게서 1.5인분, 때로는 2인분의 일을 뽑아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불편하고 더딘 것을 못 참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을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비효율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야근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온 한 게임회사는 최근 야근·주말근무 금지 등의 개선안을 내놨다. 게임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그동안 심야시간에 업데이트를 진행했는데, 이런 시스템이 야근으로 이어진 만큼 앞으로는 낮 시간에 업데이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선안이 정착하려면 게임 유저들이 불편을 달갑게 받아들어야 한다. 해당 게임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우리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져도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 우리가 칭송하던 빠르고 편리한 사회는 누군가의 건강과 가족관계를 갉아먹으면서 유지돼온 것일지도 모른다.

김유나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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