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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고개 아리랑'-국가의 토지강탈 의혹 사건] 정보기관서 굳이 민간인 송사 개입 왜 … 풀리지 않는 의문

입력 : 2017-02-13 18:49:16 수정 : 2017-02-14 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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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보안사 불법수사 배경·석연치 않은 해명/‘토지 사기단 조사’ 빌미로 관여/ 軍, 강제연행·감금 인정했지만/ 고문한 사실은 부인으로 일관/ 송씨 등 “가혹행위 있었다” 진술/ 변 소령, 소 변호사 사무실 찾아/“개인 감정 없었다” 사과하기도 국군보안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가 이갑수씨의 쑥고개 토지강탈 의혹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배경과 경위에 관심이 집중된다. 군사정보 수집과 그에 따른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수사정보기관이 민간인의 토지 사건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보안사 역시 이 사건에 자신들이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민간인 수사에 대한 잘못을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서울지구병원’ 간판 내건 옛 보안사 본부 ‘국군서울지구병원’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국군보안사령부 본부의 옛 전경. 이갑수(사망)씨의 4녀 이상연씨의 남편 송세관씨는 40일 동안 서울 모처에 감금돼 고문을 당한 뒤 차에 실려 빠져나갈 때 본 건물 간판에 ‘국군서울지구병원’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신문 제공
◆보안사가 왜 토지강탈에 나섰나


13일 취재팀이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보안사의 1978년 11월20일자 공문에 따르면 “(대공처 서빙고분실에 근무한) 변 소령은 수사관 4명을 지휘, 동 사건(토지 사건) 조사 처리를 위해 피진정인 이상권 외 관련자 전원을 임의동행해 약 10일간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갑수씨의 4녀 이상연씨의 남편인 송세관씨가 같은해 9월 청와대에 제출한 진정서에 대한 답변이다.

보안사는 이 과정에서 폭행·고문을 한 사실은 없으며 토지 소유권에 대한 권리 포기를 강요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요는 ‘선량한 농민을 괴롭히는 토지 사기단 조사’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군이 민간인의 송사에 개입한 배경에 의문이 든다.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 조사를 담당했던 변모 소령은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보안사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은 없었다”며 “민간인에 대한 수사가 위법이기는 하나 보안사에서 타 기관의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일부 잘못을 시인했다. 그는 특히 보안사에서 이씨 사건 수사의 계기로 지목한 ‘제3자의 진정서’를 보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보안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 과정에서 불법 연행과 감금이 이뤄진 사실도 인정했다. 이씨는 당시 2주간 감금돼 있다가 소송 포기 후에야 풀려났고 당시 소송대리인이었던 소중영 변호사(2008년 사망)도 납치·감금돼 사임계에 도장을 찍도록 강요당했다. 소 변호사는 진실화해위 진술서를 통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니 사임서만 쓰면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진실화해위 인권침해 조사국장이었던 이명춘 변호사는 “(진실화해위 조사 당시) 소 변호사의 진술은 진실 가능성이 100%라고 판단했다”고 전해 보안사가 소 취하를 강요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보안사 공문 국군보안사령부가 1978년 11월 20일 이갑수씨 후손의 땅 소송과 관련해 ‘처남 이상권씨가 보안사에 감금돼 폭행 고문을 당했다’는 송세관씨의 진정서에 대해 회신한 공문. 보안사는 보안사령관 직인이 찍힌 이 문서를 통해 이상권씨를 임의 동행해 10일간 조사를 벌인 사실을 인정했다.(위 빨간색 사각형 부분)

◆정말 고문 없었나

보안사가 불법연행·감금을 인정하지만 고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씨와 송씨, 소 변호사 등은 감금 당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한다.

송씨는 40여일 동안 감금돼 갖가지 고문을 당한 뒤 차에 실려 출소할 때 건물에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진실화해위에서는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섰지만 국군서울지구병원 내에 조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고, 보안사의 후신인 기무사에서도 “국군서울지구병원에는 고문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주장해 결국 고문에 대해 규명해내지 못했다.

1978년 당시 송씨 앞으로 발송된 보안사 공문과 변 소령 등 모두 일관되게 고문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송씨 등의 증언이 구체적이었고, 조사 이후 변 소령이 소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와 “저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요”라며 “저희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 특수요원들이니 변호사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으니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사과한 점 등에 비추어볼 때, 불법 납치·감금 후 인권침해가 이루어졌으리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고위 정보당국자였던 A씨는 “정황을 종합해볼 때 송씨가 끌려간 곳은 위장간판을 걸어 놓은 보안사 안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뒀다. A씨는 “이상권씨는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간 게 맞는 것 같고, 송씨는 안가로 갔다가 간판을 보고 착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뒤 안 맞는 해명들

취재팀이 보안사의 1978년 공문과 진실화해위 조사·면담 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당시 사건에 개입했던 이들의 증언과 해명이 나왔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강제 연행과 감금은 인정하면서도 고문에 대해서는 부인으로 일관해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먼저 이상권씨는 장예준 장관과 점심식사를 한 뒤 돌아가는 길에 납치됐다고 전해졌다. 동생 부부가 이씨가 실종된 줄 알고 2주 동안 발을 동동 굴렀던 것도 점심을 먹으러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근무했던 변 소령은 이씨가 살고 있던 영등포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다고 진실화해위에서 진술했다. 이 아파트에서 이씨와 동생 내외가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연행됐다면 이들은 단순 실종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 소령은 “당시 적법한 수사권이 없었으므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불법체포·감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고 인정하면서도 “당시에는 보안사 직원들에게 잡혀 함께 가자고 하면 순순히 응해 주던 시대여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협박 못 이겨 사임계 제출” 이갑수씨 후손들의 쑥고개 땅 소송 변호를 맡았던 소중영(사망) 변호사가 2008년 3월 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서 밝힌 내용을 정리한 ‘면담결과 보고서’. 보고서에는 1976년 서빙고 보안분실로 납치돼 소송 대리인에서 사임하라는 협박과 강요를 받고 사임계를 제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 변호사에 대한 진술도 엇갈린다. 소 변호사는 “신청인 이씨 측의 소송을 수행하던 중 오전 7시쯤 출근 전 건장한 남자 2명이 집으로 찾아와 한남동 서빙고 대공분실로 납치됐다”고 2006년 진실화해위에 진술했다. 반면 변 소령은 수사관들이 변호사 사무실로 나가서 소 변호사를 데리고 왔다고 주장했다. 또 소 변호사는 서빙고분실에 끌려간 직후 “(쑥고개 토지가) 이상권씨 소유가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변하자 조사관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고 보안사에 있는 작업복으로 갈아입혔다고 말했다. 변 소령은 2008년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복은 조사를 받는 데 불편하고 넥타이 등은 자살의 위험이 있어 작업복으로 갈아입힌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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