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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내가 본 마지막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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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9 22:07:01 수정 : 2017-04-11 16: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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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순(1962~)
두 눈에 조개껍질을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오래된 철교를 부수는 소리

두 눈에 조개껍질을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허리에 돋아난 제 발들을 떼어내는 소리

두 눈에 조개껍질을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내 눈동자를 빼가는 소리


문인화(文人畵)란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화가가 아닌 문인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전문가가 아닌 문인들이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사물의 외형보다는 내면에 치중한 관계로 기법적으로 아마추어적 경향이 짙었다. 그러던 게 남종화 또는 남종문인화로 자리 잡아 분류하게 된 것은 중국 명나라 말기 화가 동기창, 막시룡 등에 의해서다. 우리나라에도 이 화풍이 전래·발전하게 되었는데,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대표적 작품으로 들 수 있을 게다. 시화(詩畵) 일치의 정신·사상·철학을 중시하였다.


김영남 시인
그러면 화가시(畵家詩), 즉 화가 출신이 쓴 시는 어떠한 모습일까. 대표적 사례를 든다면 박상순의 시를 들지 않을까 싶다. 그는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 출신 시인이다. 그의 시는 반복의 소재, 반복의 문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비선형적 상상을 통해 환상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상의 시 이후 가장 개성적인 시였다고 할까. 비선형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통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익숙한 사람은 그의 시에서 쾌감을 느낄 게다.

인용시 ‘내가 본 마지막 겨울’은 “두 눈이 조개껍질처럼 생긴 사람이 안개 속에서 철교를 부수고, 허리에 돋아난 발들을 떼어내고, 내 눈동자를 빼가는 소리”가 들리는 풍경이었다는 내용이다. ‘철교’와 ‘발’과 ‘눈동자’는 소재 간의 간극이 너무 커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소재 사이에 무엇을 채우고 읽느냐는 독자의 몫이고,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그 상관관계와 더불어 환상적인 공간의 탄생 여부도 발생하게 된다. 하여 그의 시를 읽을 때면 필자는 ‘바실리 칸딘스키’, ‘호안 미로’의 그림을 떠올릴 때가 많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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