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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끝까지 가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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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3 21:23:44 수정 : 2017-04-11 17: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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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마음을 줘야 아름다운 끝 당도
미련 없이 나를 던질 그 무언가를 찾자
멀티태스킹은 원래 컴퓨터가 여러 개의 작업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에게 더 자주 쓰이는 말이 됐다. ‘그 사람은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칭찬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다중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안 되더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도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는 식으로 답답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실질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잘 해내지 못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멀티태스킹에 능하다면,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해마다 수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대화 중 상대방이 휴대전화를 힐끗거릴 때마다 우리가 상처받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크렌쇼의 ‘멀티태스킹은 없다’에 따르면, 우리는 사실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스위치태스킹’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두 가지 업무를 놓고 스위치를 이쪽저쪽으로 누르듯이 왔다 갔다 할 뿐이며, 그 속도가 워낙 빨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 걱정을 하는 우리의 두뇌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고 믿는 동안 실은 그 어떤 일에도 완전히 순수하게 집중하지 못한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사실은 저 일을 걱정하고 있기에 이 일에도 저 일에도 완전히 마음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한 번 끝까지 가 본다’라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정현종의 시 ‘어떤 풍경’을 읽으니 ‘끝까지 가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느낌인지를 알겠다. “옥호가 ‘가보자 끝까지’이다/ 조개, 장어를 파는 식당./ 강릉 문화원 근처./ 조개를 먹는 일/ 장어를 먹는 일이/ 끝까지 가는 것임을 처음 알았다!” ‘가보자 끝까지’라는 가게이름이 시인을 웃음 짓게 한다. 아, 조개와 장어를 열심히 맛있게 먹는 일도 어딘가의 끝까지 가보는 일일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저기 저 앉아 있는 노인은 어떤 끝까지 경험해본 것일까. “그 식당 앞에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다/ 저 평상은 저 노인의 끝일까./ 어떻든지 간에/ 거기 노인이 앉아 있지 않으면/ 그 풍경이 말짱 꽝이라는 건 틀림이 없다,/ 노인이 풍경을 살려놓고 있다/ 노인은 끝내 꽃피었다.” 이렇게 시 한 편 끝까지 읽고 나니 ‘끝’이라는 것이 꼭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끝’을 순간순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완전히 마음을 주었을 때에만 끝까지 가볼 수가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끝까지 가본 것들’은 한 점 미련 없이 사랑하고 불타오르다가 더 이상 타오를 마음의 연료가 없어질 때까지 모든 걸 쏟아부었다. 나도 멀티태스킹을 한답시고 컴퓨터 화면을 여러 개로 나눠서 사용해본다. 그랬더니 일을 따로따로 나눠서 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도 그럴진대, 사람과 마음과 세상은 어떻겠는가. 가끔은 하루 종일 한 가지 일만 생각해보자. 이 사람과 함께할 땐 오직 이 사람에게 온 마음을 쏟자. 남김없이 불태우고, 후회 없이 사랑하고, 미련 없이 나를 던질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자.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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