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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유니폼 38번 윤성효…프로축구 영구결번 2호,성실의 대명사

입력 : 2017-03-25 08:31:00 수정 : 2017-03-24 10: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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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38번의 주인공…②윤성효, 한국 프로축구 영구결번 2호 

◇ 화려함보다는 성실함과 희생정신으로 전설대열에

윤성효(1962년 5월 18일생)는 1985년 한일은행에 입단한 뒤 1987년 포항제철로 스카우트 되면서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7시즌 포철에서 뛴 뒤 대우(1994~1995년), 수원 삼성(1996~1998, 2000년)으로 팀을 옮겼다.

눈여겨 볼 점은 가장 오랜기간 몸담았던 포항제철이 아닌 수원삼성이 그의 등번호 38번을 영구결번한 것이다.

윤성효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많은 활동량을 자랑했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표팀에 잠깐 발탁됐으나 이렇다할 기록이 없다.

프로에서도 291경기를 뛰면서 16골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 축구사상 김주성(1999년 영구결번)에 이어 두번째 영구결번 영예를 안은 것은 희생정신 때문이다.

한일은행 시절 스승이던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수원삼성 창단멤버가 된 윤성효는 맏형으로 부지런히 팀을 위해 움직였다.

1998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 윤성효는 그해 9월 은퇴경기까지 치렀지만 부상자가 속출하자 복귀, 팀 우승을 이끌었다.

이에 수원 삼성은 그의 등번호 38번을 결번처리하는 예우를 했다.

결번 날짜만 따지면 윤성효가 김주성보다 앞서나 공식 날짜에선 한창 뒤로 밀렸다.

◇ 영구결번, 2011년 공식 발효

윤성효 등번호가 영구결번된 사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팬들은 물론이고 팀 관계자도 잊어 버렸다.

2000년 팀 사정에 따라 코치로 있던 윤성효는 38번을 달고 잠시나마 현역에 복휘했다.

이후 팀을 떠나 2004년 숭실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영구결번 사실은 또한번 묻혀졌다.

그의 등번호 38번은 황무구, 허재원 등 몇몇 수원 삼성 선수들이 달고 뛰었다.

그러던 중 2010년 6월 수원삼성 사령탑에 오른 뒤, 당초 결정대로 결번처리 해야한다는 여론에 따라 2011년부터 영구결번이 공식화 됐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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