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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봤어요. 선팔(먼저 팔로)하고 갑니다. 맞팔(서로 팔로)해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긴 한 줄의 제안. 종종 가는 카페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인증샷을 올렸더니 어김없이 댓글이 달린다. 해외 유명 국제 전시회장 풍경이나 자동차 시승회에 등장한 신차 사진, 드라이브 후 즐기는 맛집이나 커피 사진을 올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단 한 점의 친분도 없는 이들이 사진 하나를 매개로 ‘친구가 되자’고 말을 건다. 적극적인 이들은 댓글이나 메시지를 보내고, 대부분은 그저 묵묵히 내 계정을 먼저 팔로하는 것으로 맞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취재 현장과 일상의 기록을 손쉽게 남기고 싶어 시작한 인스타그램에 50여 개의 게시물을 올렸을 때쯤 눈치챈 것이 바로 이 ‘맞팔의 경제학’이다. 친구나 지인 중심의 페이스북과는 또 달라 인상적이었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게시물 하나를 올리면 순식간에 나를 선팔하는 이들이 최대 수십명 수준으로 늘어난다. 팔로어가 많아졌다는 기쁨도 잠시. 내가 그들을 맞팔해주지 않으면 며칠 내로 내 팔로어 수는 원상복귀된다. 선팔하고 갔던 이들이 맞팔 여부를 확인한 후 곧장 나를 언팔(팔로 취소)해버리기 때문이다.

매정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극히 경제적인 선택이다. 나를 선팔해 준 이에게 맞팔로 응답함으로써 확실하게 내 팔로어를 늘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암묵적인 규약에 동참하지 않는 나 같은 사용자는 그 이득을 누릴 수 없다. 이 정도면 ‘디지털 시대의 상부상조’쯤 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인스타그램의 맞팔 문화는 이른바 SNS 시대의 가능성에 대한 경이로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긴다.

무엇보다 사용자들이 이토록 팔로어 늘리기에 혈안이 된 것은 이미 SNS가 단순한 일상기록을 넘어 상상 이상의 확대된 기능을 하게 됐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내게 팔로어 신청을 한 이들만 봐도 그 면면이 무척 다양했다. 이들은 가게나 제품 홍보를 위한 상업적 용도, 개개인의 유명세 높이기나 관심 끌기용, 회사나 브랜드의 효과적인 이미지 메이킹 수단 등으로 SNS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맞팔 친구’는 그저 인스타그램 친구 한 명이 아니다. 팔로어 한 명 한 명이 곧 돈이자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 낼 원천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보니 짧은 시간에 팔로어 늘리기를 도와주는 유료 프로그램마저 사고파는 시대가 됐다. 각종 재능 공유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재능마켓 등에서는 해당 프로그램들이 판매 1위를 독식하는 실정이다.

다만 이 모든 경제학적인 이유를 인정하더라도 무분별하게 팔로했다 취소했다를 손쉽게 뒤집는 ‘관계의 가벼움’만큼은 여전히 남는 일말의 찜찜함이랄까. 이미 1년여 전 조사에서 요즘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이별통보 방식이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한 통(44.2%)’이 됐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의 맞팔 문화 속에서 SNS 시대에 얄팍해질 대로 얄팍해진 우리네 관계를 떠올린다면 너무 과민한 반응일까.

정지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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