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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재보선은 잠룡과 인연이 많다. 1998년 7월21일 치러진 종로 보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5년 뒤 대통령이 됐다. 보선 원인을 제공한 이명박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이겼다. 석 달 앞서 4월2일 실시된 대구 달성 보선에선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엄삼탁 국민회의 후보를 꺾었다. 15년 뒤엔 청와대에 들어갔다.

5·9 대선 출마자 중에도 재보선 경험자가 적잖다. 공교롭게도 국민의당(안철수·손학규)과 바른정당(유승민·남경필)이 닮은꼴이다. 2013년 4·24 재보선에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노원병에 출마해 첫 금배지를 달았다. 1993년 손학규 서강대 교수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변신해 경기 광명 보선에서 승리, 정계에 진출했다. 유승민 경선후보는 2005년 비례대표 의원직을 버리고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 나서 친노 이강철 열린우리당 후보를 눌렀다. 남경필 후보는 1998년 7·21 수원 팔달 보선에서 이겼다. 당시 33세였던 그의 승리는 예측을 뒤엎은 이변이었다. 당락이 확정되자 가장 먼저 이회창 전 총재의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규모 큰 재보선은 미니총선으로 불리며 정국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8년 4·2(4석), 7·21(7석) 재보선에서 8석을 건진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났고 이회창씨는 앞당겨 그해 8월 총재직에 복귀했다. 반면 김대중정부는 내상을 입었다. 노무현정부는 열린우리당의 재보선 연전연패로 국정 주도권을 잃었다. 재보선은 통상 여당의 무덤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답게 집권 후에도 나름 선방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탄핵되면서 대선 보선에서 보수가 참패할 위기를 자초했다.

4월12일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에서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진다. 자유한국당은 당초 탄핵 정국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다한다는 이유 등으로 무공천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다 일주일 만에 뒤집었다. 결국 친박계 핵심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2일 공천을 받았다. 조기 대선에 밀린 재선거의 무관심을 틈타 얌체짓을 한 셈이다. 그는 그제 “보수정치의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겠다”고 했는데, 소가 웃을 얘기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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