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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커플, 더 이상 왕자·공주 아님을 깨달아야
상대 위해 기꺼이 머슴·무수리 돼 줄 때 행복
모든 가정은 하나의 작은 왕국이다. 모든 자녀는 왕자와 공주이다. 왕자와 공주는 너무 귀한 존재이기에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들의 시중을 들어준다. 가정에서의 모든 사람은 물론 부모이다. 모든 부모는 정성을 다해 자신의 왕자와 공주에게 일방적인 ‘내리사랑’을 한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자라는 어린이들은 부모의 내리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항상 부모에게 요구만 한다.

왕자와 공주에게는 항상 주위에 머슴과 무수리가 있다. 왕자와 공주는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으로 온갖 정성을 쏟는 부모를 바라보면 머슴 중에서도 그런 상머슴이 없고, 무수리 중에서도 그런 상무수리가 없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상전 중에도 그런 상전이 없다”고 말한다. 즉 부모는 머슴과 무수리가 되며 자녀가 상전이라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는 대인관계에서 ‘나’와 ‘너’의 중요성의 상대적 비율이다. 대인관계는 ‘나’와 ‘너’로 이루어진다. 즉 모든 대인관계에는 ‘상대’가 존재한다. 대인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나와 너’의 관계를 잘 맺는다는 뜻이다. 대인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상대에 따라 ‘나’와 ‘너’의 비율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또 동일한 상대라도 여건에 따라 그 비율을 적절히 변화시켜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숙해질수록 ‘나’ 위주에서 ‘너’ 위주로 변해간다. 왕자와 공주의 대인관계는 ‘나’의 비중이 ‘너’에 비해 훨씬 높다. 사실 ‘너’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왕자나 공주보다는 머슴과 무수리가 심리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다. 왕자나 공주는 ‘나’만 있지만, 머슴과 무수리에게는 ‘나’보다 ‘너’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일관되게 성숙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떠나라’고 훈계한다. 여기서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떠나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떠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를 떠나야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로도 잘 알 수 있다. ‘탕자의 비유’라고 잘 알려진 이 비유에는 성숙한 삶과 미성숙한 삶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어떻게 미성숙한 삶에서 성숙한 삶으로 변화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봄이다. 이제 곧 여기저기서 청춘 남녀들이 짝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모두 자신들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자신이 왕자나 공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너’가 없고 ‘나’만 있기 때문이다. 머슴과 무수리가 만나야 행복해진다. 상대를 위해 기꺼이 머슴과 무수리가 돼 줄 때 마음이 건강해지고 비로소 행복한 결혼생활의 대로가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만남과풀림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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