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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미·중 정상회담과 한민족 정치·문화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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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1 01:14:48 수정 : 2017-04-11 18: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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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 누리려면 창의 필요 / 사대·식민주의 과감히 벗어야 / 강대국의 먹잇감 되지 않도록 / 나라와 민족 지킬 지혜 모을 때 구한말 조선은 구미열강과 일본제국의 침략에서 독립국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것은 일본식민지가 되는 길뿐이었다. 친러파, 친청파, 친일파, 친영파, 친미파 등 여러 당파로 세력균정과 거중조정을 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약소국이 제국들을 상대로 허브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렇더라도 힘과 중심이 있어야 그런 중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내부 분열은 도리어 열강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조정(朝政)의 실패와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설상가상으로 일본제국 군대의 반도 상륙을 앞당길 따름이었다. 동학농민의 일부는 차라리 일본 통치를 원했고, 후에 상당수가 일진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내우는 궁극적으로 외환으로 통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지금은 어떤가. 태평양전쟁의 부산물로 맞은 한반도의 해방과 광복은 남북 분단을 가져왔고, 6·25 동족상잔을 거쳐 북한과 남한으로 분단돼 지금까지 단말마적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적 문화정체성 수립은 고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도리어 당쟁에서 찾고 있는지 모른다. 구한말 한반도를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도록 합의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 맺은 ‘가쓰라·태프트협정’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욱일충천하고 있었고, 뒤늦게 열강의 대열에 뛰어든 미국은 필리핀을 수중에 넣는 대신 한반도를 일본에 허용했다. 일본의 조선병탄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요리하고 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당시 일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소비에트 퇴진 후 미국과 함께 양극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직접 맞부딪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북한을 입술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제안한 ‘6자회담’은 도리어 열강의 간섭을 자초하는 데 그쳤다. 중국의 자국이익주의와 이중적인 태도는 시간만 허비한 채 북한을 핵보유국에 이르게 했고, 북한의 핵보유는 결국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무력화하기에 미국이 급해졌다.

북한의 핵시설과 정치심장부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의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중 정상의 합의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중국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미국은 북한 직접공격을 통보하는 기회(미·중북핵억제협력합의)를 얻은 것 같다. 북한 핵은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공격한 것 이상으로 미국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다. 결국 통일은 고사하고 한민족이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은 10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와 체제경쟁의 악화도 결국 한민족의 내부 문제로 보면 당쟁의 연속이다. 한국으로부터 경제개발의 아이디어와 시장경제를 배운 중국이 사드 보복을 하는 것은 국제 역학관계의 냉엄함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제2의 ‘가쓰라·태프트협정’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염려된다.

한민족은 스스로는 잘난 것 같지만, 실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사대·식민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문화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한국의 지식인과 권력엘리트들은 문화 전반에서 철저히 서방선진국의 기술제도 모방에 만족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이미 중국 사대주의로 선회하고 있는 징조를 읽을 수 있다. 일련의 현상들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사대·식민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인의 정치·문화적 발상은 그 자체가 이미 사대·식민지적 맥락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만한 채 국내적 권력경쟁(당쟁)과 심각한 족벌주의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구한말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혹시 오늘의 민중민주주의가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려면 창의와 모험이 반드시 필요한데 우리는 그것이 부족하다. 한반도는 항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분점 유혹을 받고 있는 지정학적 조건에 있는 게 사실이다. 세계 동서남북 문화와 무역의 교량인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이면서도 국토의 4분의 3이 산인 금수강산이기에 세계 열강의 눈독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강대국의 한반도 지배의지를 욕하기 전에 그만큼 이 땅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과거 일본의 야욕이나 미국과 중국의 현재적 욕심을 ‘나쁘다’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 국토를 보존하려는 의지와 지혜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 땅을 지켜 자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는 것이며, 더 이상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을 의무와 지혜의 발휘를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 땅의 대통령 후보들은 강대국들의 자국이익주의와 음모와 밀약의 국제정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욕에 눈멀어 있다. 오늘의 정치현실을 보면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1894년), 명성황후 시해(1895년), 아관파천(1896∼1897)이 벌어졌던 갑오, 을미, 병신, 정유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중첩됨을 피할 수 없다. 19세기 근대화를 앞두고 벌어졌던 당쟁들이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또다시 재현되는 것 같은 두려움을 저버릴 수 없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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