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환경부에 따르면 30일부터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이 시행된다. 우리나라 1호 동물원인 창경원 개장(1909년) 이후 100여년 만에 만들어진 법이다. 하지만 사육환경 기준 마련과 동물복지위원회 구성 등을 담았던 원안이 관련 업계의 반발로 내용이 크게 축소돼 ‘동물이 빠진 동물원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동물원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고, 사육 동물 수별로 적정한 규모의 수의사나 사육사 배치를 의무화했다. 모두 동물원 설립과 운영에 관한 규정일 뿐 어딜 봐도 동물 복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동물 법적지위 보장하라” 동물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 ‘케어’ 회원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의 법적 지위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동물을 일종의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는 현행 민법 98조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 연합뉴스 |
스위스 동물원법은 동물 종별로 최소 사육면적을 규정해 놓았는데 면적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넓을 뿐 아니라 실내외 기준을 분리했다. 호랑이의 경우 2마리까지는 실외 80㎡, 실내 30㎡의 면적을 최소한 보장받는다. 1마리라도 면적기준은 같다. 단순히 규정으로만 따졌을 때 우리나라 동물원의 호랑이보다 8배 넓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미국과 호주도 동물복지에 관한 내용이 동물원법의 핵심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외국 사례를 참고해 기준을 만들었는데 국내 동물원 중에 코끼리 사육기준을 맞출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당초 동물원법 제정안에는 사육동물 환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었지만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빠졌다.
외국은 법으로 일일이 사육기준을 정할 수 없는 경우 각 나라 동물원협회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한다. 미국의 AZA(동물원수족관협회), 유럽의 EAZA, 영국의 BIAZA 등은 모두 홈페이지에 동물별 사육 환경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KAZA가 있지만 사육 지침은 없다.
동물복지 관련 단체에서는 ‘동물 애호가’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동물원 동물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유기묘인 찡찡이와 뭉치, 유기견인 마루와 지순이를 키우고 있고, 곧 유기견 토리를 입양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반려견 놀이터 확대와 유기동물 재입양 활성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 확대 등의 반려동물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이번에 시행되는 동물원법은 동물 복지 규정이 모두 빠진 채 껍데기만 남은 법”이라며 “시설 규정을 마련해 부합하는 곳만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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