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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벤치에 그늘이 앉아 있다

나는 그 그늘에 앉는다

특별한 그늘, 그러나 시한부 그늘,

창대했던 그 그늘 속에서

그리운 거 하나 없었는데,

그늘은 점점

햇빛을 제 몸에 들이고 있다

그늘과 햇빛이 만드는 저,

무지개.

6월의 햇빛이 강렬합니다. 뫼르소가 총을 쏠 만한 날씨입니다. 모처럼 그늘을 찾아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산 중턱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책을 펼칩니다. 햇빛이 걸어와서 어느새 내 몸을 야금야금 먹고 있습니다. 벤치 끝까지 따라온 햇빛.

“그리운 거 하나 없었는데” “창대했던 그늘”이 사라집니다. 더는 뜨거워서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창대한 그늘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시원하고 쾌적합니다.

박미산 시인
그 그늘은 특별하지도 고마울 것도 없는 그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 그늘 속에 있을 때 그늘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지요. 시한부가 아닌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그늘로 생각하며 삽니다.

부모님의 그늘, 남편의 그늘, 아내의 그늘, 자식과 나의 그늘은 시한부 그늘입니다. 그늘은 시한부가 될지라도 햇빛을 품어 무지개를 만듭니다. 우리의 생은 그늘처럼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입니다.

박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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