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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한여름 얼음계곡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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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26 21:28:45 수정 : 2017-06-27 0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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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빙계선 여름에는 얼음 얼고
겨울엔 영상 기온 유지하며 훈풍
과학적 설명 힘든 음양원리 추정
세상사 지나침 경계 하라는 교훈
경북 의성읍 남쪽 40여리 떨어진 곳에는 빙산(氷山)이 있다. 이 산에 쌓인 돌들은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많아서 마치 낙숫물을 담는 그릇과도 같고 사립문이나 방과 같은 모양을 한 곳도 있다. 이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氷溪)라고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고 한다. 여기에 빙계 계곡이 있다. 빙계 계곡은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물이 흐른다. 이 계곡을 유명하게 하는 곳은 빙계리 입구에 있는 바위틈인 빙혈과 풍혈이다.

빙혈은 얼음이 어는 구멍, 풍혈은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다. 풍혈은 빙혈 위에 있는데 폭 1m, 높이 2.5m, 길이 10m쯤으로 좁은 편이다. 이곳은 입춘(立春) 때 찬 기운이 처음 나오다가 입하(立夏)에 얼음이 얼기 시작해 하지(夏至)의 막바지에 이르면 영하 4도를 유지하면서 얼음이 단단하고 찬 기운이 더욱 매섭다. 공기가 차고 땅이 어는 만큼 이곳에는 풀이나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그러다가 입추(立秋)가 되면 따뜻한 기운으로 얼음이 녹기 시작해서 입동(立冬)에 찬 기운이 다하고 동지(冬至)의 막바지에 이르면 더운 김이 나기 시작해 얼음이 모두 녹아 구멍이 비게 된다. 겨울에도 이곳은 영상 3도를 유지한다. 추운 날에는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연구가
일년 중 가장 뜨거운 한여름에도 얼음이 있는 빙산(氷山), 시원한 계곡인 빙계(氷溪)가 되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과학의 입장에는 이 빙계 계곡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옛 사람들은 음양의 원리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천지의 기운을 살펴보면 봄과 여름에는 따뜻한 기운이 밖으로 많이 빠져나가 모든 생물이 발육을 하기에 안에는 음기가 많아지고, 가을과 겨울에는 밖에 차가움이 많아지면서 기운이 안으로 모여 그 속에서 머물게 된다. 안의 양기(陽氣)가 빠져나가는 봄과 여름에는 밖으로부터 응결된 음기(陰氣)가 안으로 모여 있게 되고 가을과 겨울에는 온후(溫厚)한 양기가 안에 모여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깥 온도가 올라가는 입춘에 오히려 안의 기운은 춥기 시작하여 입하에 얼음이 얼고 하지에 얼음이 굳으며, 하지를 지나 외기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입추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입동에 얼음이 다 녹고 동지에 구멍이 비는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천지에서 볼 때 음의 기운이 컸다가 사그라지면서 양이 크고 그러다가 다시 음이 크는 식으로 음양이 번갈아 자랐다가 사라지는 현상, 한번 음이 오면 그다음엔 양이 오는 음양의 왕래의 현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곳만 그런가? 이곳은 바위 구멍이 땅속 바닥까지 뚤려 있어 여름에는 땅속에 잠복한 음기가 이를 통하여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가 납득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무튼 천지의 음과 양의 기운이 번갈아 나오고 사라지는 원리가 이런 데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핵심은 양의 기운이 최고조라고 할 하지에 이미 음의 기운이 시작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한참 잘 나갈 때에 쇠퇴, 혹은 쇠망의 기운이 이미 시작돼 있다는 생각이다. 음양은 기(氣)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무형의 기(氣)가 유형의 질(質)을 창조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 한 가지도 음양(陰陽)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음양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 것은 없다.

일 년의 음양은 동지(冬至)에 양(陽)이 생기기 시작해 점점 자라서 하지(夏至) 바로 전에 양이 최고가 되면서 곧바로 음(陰)이 생겨나서 음이 점점 자라나 동지 전에 극(極)에 달했다가 동지에 다시 양(陽)이 생한다. 동지에 양의 기운이 시작되어 커지다가 하지 바로 앞에서 가장 커지고 하지에는 음의 기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지에 일양(一陽)이 생긴다고 하고 하지에는 일음(一陰)이 생긴다고 한다. 하루를 놓고 보면 밤 12시쯤인 자시(子時)에 일양(一陽)이 일어나서 커지다가 낮 12시라 할 오시(午時)에는 일음(一陰)이 생하여 커지고 그러다가 밤 12시에 가까워지면 다시 양의 기운이 시작된다. 그것은 음이 지극하면 양이 생기고(陰極生陽) 양이 지극하면 음이 생기는(陽極生陰) 음양(陰陽)의 순환이자 자연의 법칙이다.

이 같은 순환의 법칙은 곧 모든 이들에게 잘나갈 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다가간다. 조선조 선조 34년(1601년) 사간(司諫)인 송영구가 영의정인 이항복에 대해 왕 앞에서 칭찬을 많이 하자, 왕은 그것이 지나침을 지적해 송영구를 해직시키면서 “나는 일음의 조짐이 하지에서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 일은 지나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이 음양성쇠의 법칙에서 찾고 있다.

추운 겨울 손 비빌 때가 언제였는데 벌써 하지가 지났다. 올해의 반이 지나가고 이미 음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이 음은 차갑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양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원리일 뿐이다. 다산 정약용은 ‘하지’라는 시에서 “달은 삼십일 동안에 / 겨우 하루만 둥그렇고 / 해는 일 년 동안에 / 제일 긴 날이 하루뿐이야 / 성쇠란 서로 꼬리를 무는 것이로되 / 언제나 성할 때는 잠깐이지”라고 하였다. 지극히 성하면 곧 쇠한다는 원리, 세상 일을 음과 양의 두 가지 측면에서 치우치지 않게 보고 넘치지 않게 대우하고 행동하라는 지혜를 한여름 의성의 빙계에서 다시 새겨본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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