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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우편 물량 줄었지만… 등기·소포 늘어 중노동 늪 ‘허우적’

입력 : 2017-06-26 19:11:09 수정 : 2017-06-27 16: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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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집배원 과로사 / 이동거리 하루 80∼100㎞ 지역 600곳 / 한 명만 안나와도 50㎞ 더 달려 배달 / 동료 고생 뻔한데 휴가 낼 엄두 안나 / 우정본부, 주당 근로 48.7시간 산정 / 노조 월 초과만 50시간 넘는다 주장 / 우편물 분류작업 1시간만 인정 불만 / 우정본부·노조 ‘집배부하량 산출’ 충돌 / “과학적 산출 결과” “변수 무시 폐기” / 부활한 ‘토요근무’ 싸고도 갈등 고조
손편지를 써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전자우편 시대, 사라질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집배원들이 피로누적과 과로사의 공포를 호소하고 나섰다. 우편물이 5년새 10억통이나 줄어 매년 수백억원의 우편수지 적자가 발생한다는데 집배원들은 왜 장시간 중노동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우편물 줄었는데 집배원 사망·사고 왜 잇따르나

26일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우편물 배달물량은 2012년 51억2100만통에서 지난해 41억3400만통으로 감소했다. 집배인력은 이 기간 624명 늘었다. 덕분에 집배원 1인당 배당물량도 2012년 일평균 1216통에서 2016년 982통으로 줄었다. 수치만 보면 집배원들의 업무부담이 꽤 줄어든 듯하다.

하지만 배달가방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편지와 세금고지서 같은 일반통상(우편물)은 2012년 45억6700만통에서 2016년 35억2600만통으로 22.8%(10억4100만통) 감소한 반면 등기소포는 같은 기간 1억7500만통에서 2억2600만통으로 28.7%(5000만통) 늘었다. 일반우편은 우편함에 꽂아넣어 한 번에 수십 통씩 배달할 수 있지만, 등기나 소포는 수취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우편이 10억통 감소해도 늘어난 5000만통의 소포 때문에 집배원들의 피로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늘고, 전국적으로 신도시가 많아진 것도 집배원 업무 가중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전국집배노조 이종훈 정책국장은 “1인, 맞벌이 가구의 보편화로 방문할 세대는 급증했는데, 집에 등기나 소포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 두 번, 세 번 다시 찾아가야 한다”며 “택배 수령문제로 가끔 경비원과 옥신각신하다 보면 시간도 지체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배원 1인당 하루 배달물량은 평균 1000통 내외이지만, 경기도와 신도시 등 세대수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밀집 지역은 하루 2000통이 넘는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대전유성·아산·세종·서청주 4개 우체국을 실태조사한 결과 이곳 집배원들은 주 13.2시간, 월평균 57시간의 초과근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배원 한 명만 빠져도 동료들의 부담이 크게 늘다 보니 제대로 쉴 수도 없다. 이들의 연가 사용일 수는 연평균 2.7일에 불과했다.

한 집배원은 “동료가 길 건너는 아이를 피하려다 넘어져 발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4주째 출근을 못하다 보니 다른 집배원들이 하루 100통 넘게 더 배달하고 있다”며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은 새벽에 나와 자정까지 일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국우정노조 차문영 홍보국장은 “이동거리가 하루 80∼100㎞에 달하는 곳이 전국에 600곳이 넘는데 이런 곳은 집배원 한 명만 안 나와도 140∼150㎞를 달려야 한다”며 “동료들이 고생할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연가를 내겠나. 그런데도 정부는 의무적으로 연차를 소진하고 유연근무를 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루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고 도로주행을 하다 보니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매년 근무 중 교통사고 등의 사고로 평균 1∼2명이 사망하고 중경상자가 250∼320명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안전사고 중 이륜차 사고가 84.2%에 달한다.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소공원에서 열린 전국집배원노조 등 전국우정노동자 총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집배인력 충원 및 우정사업본부 및 미래부 등의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0.1초 단위로 측정하는 노동력…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정사업본부는 2004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을 12년간 개발해 지난해 말 완성했다. 전국 93개 우체국 2395명의 집배원을 표본 추출하고 집배업무를 46개 단위로 쪼갠 후 각 업무별로 소요되는 평균 시간을 도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배달증 만들기 1.6초’, ‘(우편물)도착안내서 작성 35.4초’ 등 각 업무의 표준 소요시간을 0.1초 단위로 정해 놓았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 1인당 적정 배달물량을 과학적으로 산출해 효율적으로 인력을 배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 시스템으로 산출한 결과 전국 집배 소요인원은 1만5458명으로, 현 인원 1만5582명은 적정하다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입장이다.

또 노조 참여하에 함께 만든 시스템이라고 강조하지만 노조는 “당장 폐기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 한 우체국의 집배원은 “업무를 초 단위로 계산해 놨는데, 배달을 하다 보면 날씨나 교통상황 등 변수가 많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며 “궂은 날씨에 위험을 감수하며 힘들게 일하는데 시간을 잣대로 누가 늦고 빠르고, 일을 잘하고 못한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집배원의 근무시간이나 업무강도에 대한 시각차도 크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근로시간이 일평균 10.1시간, 연평균 2531시간이며, 주당 근로시간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초과근로 12시간)보다 적은 48.7시간으로 집계하고 있다. 반면 노조 측은 일평균 11시간, 연평균 2888시간이며 월 초과근무만 50시간(2016년 기준)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노사 간 차이는 대부분의 집배원들이 오전 6시∼7시30분에 출근해 당일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는 작업 후에 우체국을 나서는데, 사측에서 1시간만 인정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앞줄 왼쪽 여섯번째)과 전국우정노동조합 조합원 등이 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집배원 과로사 근절 및 부족인력 증원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배원들의 업무과다를 이유로 없어졌던 토요 근무가 부활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더 커졌다. 우정사업본부는 해마다 300억∼500억원의 우편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민원이 증가해 토요 택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는 “평일 장시간 중노동도 모자라 토요일 근무까지 하는 것이 집배원들의 건강에 위협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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