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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관’ 수에즈운하 개통 1869년 11월17일 개통된 수에즈운하는 중국 산해관(山海關) 문에 걸린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현판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이 산해관을 그처럼 중시하는 이유는 알 만하다. 누르하치는 산해관을 돌파하기는커녕 부상 끝에 죽었다. 그의 아들 홍타이지를 거쳐 손자인 순치제가 즉위하자 명나라가 내란으로 망했어도 청군이 무력으로는 그곳을 넘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현판의 ‘천하’란 중국이 중국을 지칭하는 말일 뿐이다.

그럼 ‘세계 제일관’은 어딜까? 많은 이들이 수에즈운하라고 말할 것만 같다. ‘관’은 국방의 요지만이 아니라 중요한 지역을 연결하는 요지를 상징하기도 해서다. 산해관이 중원과 동북아를 연결한다면 수에즈운하는 지중해와 홍해, 나아가서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이어준다.

수에즈운하가 들어서기 전에도 그 163㎞의 땅은 세계 제일의 요지였다. 아득한 고대에는 이집트문화와 메소포타미아문화, 그 뒤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세력을 차단하면서 또 연결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그곳에 운하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파라오 시절부터 있었고 나폴레옹도 탐색을 했다.

나폴레옹은 포기했으나 결국 프랑스가 운하를 뚫는다. 1859년 프랑스 외교관 출신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노력으로 착공돼 10년 만에 개통된 것이다.

운하 건설에 반대하던 영국도 막상 운하가 개통되자 태도를 바꾸어 1875년에는 이집트 정부 소유주를 매입하여 발언권을 강화하는 한편 운하의 중립성 보장에도 반대하는 등 주인행세를 하게 된다.

그래서 오랫동안 영국이 사실상 소유했던 수에즈운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가말 압델 나세르의 군사혁명이 일어난 지 4년 뒤인 1956년 이집트의 수중에 들어온다. 그 바람에 그해 10월에는 이스라엘을 앞세운 영·불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종국엔 이집트가 운하를 장악하게 됐다. 그래서 중동국가치고는 의외로 석유가 나지 않는 이집트가 그 지역에서 종주국처럼 행세하는 데는 이 세계 제일 관의 힘이 크다.

양평(언론인)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 전태일 분신자살

△1840년 11월14일 인상파 선구자인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탄생

△1980년 11월14일 한국 신군부 정권, 언론 통폐합 결정

△1891년 11월15일 독일의 군인 에르빈 롬멜 탄생

△1955년 11월15일 일본 보수정당 자민당(자유민주당) 창당

△1995년 11월1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1869년 11월17일 수에즈운하 개통

△1905년 11월17일 한·일, 을사늑약 체결

△1863년 11월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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