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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문화도 소리 나게 팔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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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3 21:26:18 수정 : 2017-11-13 21: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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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문화전쟁 전사인 시대
외국보다 더 나은 브랜드 만들고
해외 방문외교할 때 선전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2000년 10월16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이탈리아를 공식 방문하자 그 다음날 이탈리아 신문의 머리기사는 특이했다. ‘의문은 풀리다’(일 메사게로 신문). ‘여왕의 핸드백에 찬사를!’(라 레푸블리카) 등 언론의 관심은 여왕의 의상과 핸드백에 집중됐다. 여왕은 칼레씨가 디자인한 은청색의 드레스 위에 재킷을 받쳐 입었고, 필립 소머빌이 만든 밀짚모자를 이에 맞춰 쓰고 있었다. 그러고는 로너에서 만든 핸드백을 왼쪽 팔에 살짝 걸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영국에서 디자인되고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유명 디자이너를 동원해 여왕의 전체적인 앙상블에다가 여왕의 핸드백이 좋았다는 것을 주요뉴스로 올렸다. 그 찬사의 주역인 로너 핸드백은 1960년대 이후 영국왕실이 애용하는 핸드백이다. 런던의 허름한 왈살이라는 데서 만드는 것인데, 전통을 지키는 깔끔하고 정결한 느낌이 세계 핸드백계의 하나의 우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여왕의 의상, 핸드백, 식사메뉴로 자국의 문화를 소개했다.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밤은 영국과 이탈리아가 벌인 소리 없는 문화전쟁의 한판이었다. 밀라노의 오페라하우스인 라스칼라를 방문한 여왕, 이 극장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런던에 와서 활동하고 있는 리카르도 무티였고, 양국 국가가 차례로 연주된 뒤에는 이탈리아의 레스피기가 작곡한 ‘로마의 소나무’와 영국의 엘가가 작곡한 ‘남방에서’가 레퍼토리로 장식됐다. 여왕이 쓰고 간 소머빌이 디자인한 모자는 일부러 이탈리아 베니스의 곤돌라 색깔을 투톤으로 깔고 은색 실크울로 테를 둘렀다고 한다. 이처럼 각국 방문외교는 정상이나 부인들이 펼치는 문화대결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스트라이프 컬러 배색의 롱코트와 하이힐을 착용했다. 멜라니아 여사가 착용한 코트는 펜디 제품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도쿄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4학년 서예수업을 참관할 때는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만든 짙은 미드나잇블루 색상의 플레어 롱원피스를 입었다. 일본 순방 중 멜라니아 여사가 착용한 의상의 브랜드는 모두 미국에서 구입한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명품이다. 일본 출신 디자이너의 브랜드 의상을 고르지 않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쿄 외곽 골프장에서 2시간에 걸친 라운딩을 하는 동안, 도쿄 도심 긴자에서는 부인들의 ‘퍼스트레이디 외교’가 펼쳐지고 있었다. 당일 일본 총리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는 멜라니아 여사를 일본의 유명 진주브랜드인 미키모토의 긴자본점에 안내를 했다. 아키에 여사는 지난 2월 방미 때 멜라니아 여사에게 미키모토 진주 귀고리를 선물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트럼프의 전략은 절묘했다. 트럼프는 방일 하루 전 하와이 미군시설에 들렀고 여기에서 트위터에 ‘Remember Pearl Harbor’(진주만을 잊지 말자)란 글을 올렸다. 일본에서의 진주매장 방문을 앞두고 하필 하와이 미군시설을 방문하고서 그런 트윗을 날린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멜라니아는 진주매장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지난 7일 우리나라에 온 멜라니아 여사는 우리의 두루마기를 연상케 하는 절제된 짙은 와인색 원피스형 코트를 선보였다. 멜라니아 여사를 영접한 김정숙 여사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알리고자 특별히 제작된 ‘평창의 고요한 아침’차를 멜라니아 여사에게 대접했다. 평창 발왕산에서 자란 수국과 동서양의 허브를 블렌딩한 홍차로서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지키자는 뜻이 담겼다. 김정숙 여사는 또 크림색 치마 정장에 흰색 구두 차림으로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맞이했다.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한국적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다만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동아시아 3국 순방은 과거보다는 더 노골적으로 미국 이익을 노린 경제전쟁이었다고 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을 통한 국제 정치적인 긴장감을 활용해 미국 자국의 군수자산을 일본과 한국이 더 많이 구입하도록 하는 경제적인 실익을 가져갔고, 중국에 대해서도 북핵 공조와 함께 우리 돈 270여조원에 이르는 투자와 미국산 제품 구매계약 등 경제협력을 받아냈다. 여기에는 패션모델 출신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패션과 문화 행보뿐만 아니라 중국어 노래를 부르고 중국문장을 유창하게 외우는 외손녀까지 동원됐다. 기업인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벌인 전방위 전략이었던 셈이다.

외국에 자국의 문화를 파는 데는 여성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열심이었다. 의상이나 핸드백에서 한국 것을 알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종종 고가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전개됨으로써 문화를 수출하고 싶어하던 여성 지도자의 소망과 의도가 위축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김정숙 여사의 순방 옷차림에 대해서도 비난이 나와 청와대 쪽에서 김정숙 여사는 기성복을 사 입거나 직접 의상을 만들어 입곤 한다는 해명을 내게 됐던 것은 정녕 안타까운 일이다. 패션업계 일각에서는 “김정숙 여사는 값비싼 명품보다는 소박한 의상을 선호한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브랜드의 기성복을 입어준다면 국내 패션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문화전쟁의 전사인 시대, 우리도 ‘국산브랜드도 외국의 이른바 명품보다 낫구나’라던가 ‘외국보다 더 나은 국산 브랜드를 만들고, 일국의 지도자는 그러한 브랜드를 선전해 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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