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S 스토리] 오후 5시면 야근모드 'OFF'…직장도 가정도 '뉴라이프'

관련이슈 S 스토리

입력 : 2017-11-19 13:00:00 수정 : 2017-11-19 13:22:3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금융업계 첫 ‘9·5제’ 시행 / 오후 5시 칼퇴근… 생활의 여유 높아져 / 국민은행도 정시퇴근 독려 PC오프제 / 야근 사라져 직원들 업무 능률도 ‘쑥쑥’ / 무턱대고 도입 땐 협업 실패 부작용도 / 직원들과 실행 규칙 등 만들어 정착을 “주5일제 도입 때 못지않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규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연장근무를 없애는 등의 근무시간 단축을 경험한 금융권 직장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이들은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당연한 듯 습관처럼 이어지는 ‘야근-피로 누적-업무 효율 저하’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 

◆‘저녁이 있는 삶’ 되돌려주는 기업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라이나생명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은 “정말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게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라이나생명이 2달 전부터 금융업계에서 처음으로 ‘9.5제’(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를 시행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됐다.

도입 초반에는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오후 5시가 되면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직원들은 하던 일을 채 끝내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에서 일어서거나 다른 원래 하던 대로 야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안내방송 없이도 일찍 퇴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전 직원의 절반에서 3분의 2가량은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있다.

유달현 대리는 “집이 경기도에 있어서 1시간만 일찍 퇴근하면 교통혼잡 시간을 피해 퇴근길이 30분 이상 단축된다”며 “그동안 평일에는 회사일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었는데 1시간이 가져다주는 생활의 여유가 크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달부터 정시퇴근을 독려하기 위해 PC오프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과장은 “전에는 거의 오후 10시에 퇴근해 집에 가면 아이들이 자고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 얼굴도 보고 놀아주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근무시간 줄이기에 나선 기업들은 업무량의 큰 변화보다는 업무방식의 변화를 반기고 있다.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더 집중해서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른 사람이 야근하기 때문에 같이하는 이른바 ‘의리야근’도 사라졌다. 앞서 2013년에 PC오프제를 도입한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저녁을 먹고 와서 오후 9시 이후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낭비됐던 시간을 아끼고 열심히 일해서 오후 7시까지는 끝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금융권에도 워라밸 바람

최근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바람이 보수적인 금융권에도 불어오고 있다. 금융사들의 변신은 격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홍봉성 라이나생명 사장은 “앞으로의 보험영업 환경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과뿐 아니라 생존까지도 보장할 수 없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경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무엇보다 먼저 직원들의 마인드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그 방법으로 조직문화를 먼저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해 우선적으로 조직문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은행권도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9월부터 국내 금융그룹 최초로 전 계열사가 동시에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계열사 업무 특성에 따른 맞춤 근무제다. 주요 업무가 증권시장 마감 이후에 시작되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펀드관리팀의 야간 근무자는 익일 출근시간을 오후 1시로 조정하는 식이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회장은 “(신한은행이 먼저 스마트근무제를 실시해보니) 직원의 행복뿐만 아니라 디지털시대에 맞는 유연한 사고가 가능해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많아 그룹 전 계열사가 동시에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워라밸

워라밸의 긍정적 효과가 확인되고 있지만 전체 기업 차원에서보면 아직은 초보 단계다.

최근 통계청의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금근로자 1988만3000명 중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사람은 5.2%인 102만9000명에 불과했다. 근무시간 줄이기는 회사 차원에서 첫발을 내딛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 실정에 맞는 형태로 개량해나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충분한 내부 검토 없이 근무시간의 효율화를 추구하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한 대기업 계열사는 몇년 전 그룹 차원의 지시로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했다가 제대로 협업이 되지 않는 부작용 때문에 원래 방식으로 돌아갔다. 직원들의 근무시간이 제각각으로 쪼개지면서 회의를 소집하려고 해도 자리에 없는 직원이 속출하는 등 업무 효율이 떨어진 것이다.

워라밸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직원들의 동참과 적극적인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근무시간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철학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세세한 규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후 5시 퇴근을 원칙으로 정했다면 오후 4시 이후에는 회의를 하지 않는다는 등과 같은 워라밸 실행 규칙을 꼼꼼히 만들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조언이다.

‘8.5제’(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를 실시하고 있는 한 대기업의 직원은 “회사에서 8.5제 실시 이후 달라진 점과 개선해야 할 점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그 과정에서 조직문화가 단단해져 8.5제도 쉽게 안착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