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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도 괜찮아… 지친 말들의 낙원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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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29 13:00:40 수정 : 2023-04-29 13: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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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곶자왈 말 구조 보호센터

인간에 버려진 퇴역 경주마 40마리 보금자리
상처받은 말들 ‘쓰담쓰담’ 따스한 교감과 치유

제주 서부 중산간 지대 곶자왈에 말들의 낙원이 펼쳐져 있다. 약 68만평, 골프장 3개 규모의 말 구조 보호센터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나무와 넝쿨이 엉클어진 ‘자왈’이 합쳐진 제주어다. 인간의 개발행위가 제한된 공간이다. 오로지 새소리, 바람소리, 말들의 풀 먹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곳에서 김남훈(50) 대표는 위기에서 구조된 40마리의 말들을 보살피고 있다.

전직 프로골퍼였던 김 대표는 미국에서 ‘홀스맨십’ 교육을 받던 중 국제동물보호단체가 공개한 전기충격기로 퇴역 경주마를 불법 도축하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퇴역 경주마들의 아픈 현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김 대표는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말 구조 보호센터를 열었다.

제주 곶자왈 지역에 자리한 말 구조 보호센터에서 말들이 휴식 시간에 앉거나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 말들은 편안하고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 누워서 잠을 잔다.
제주 곶자왈 지역에 자리한 말 구조 보호센터에서 말들이 김남훈 대표가 먹이를 주기 위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고 있다.
말무리가 신선한 먹이를 가득 실은 김 대표의 트럭을 따라 달려가고 있다.

말은 30년 안팎을 산다. 국내 경주마는 4~6살이면 다치거나 경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마장을 나오게 된다. 한 해 1600여마리의 퇴역 경주마들이 생기는데, 이들 중 승용이나 번식용 등 용도 전환이 이루어지는 말은 39%에 불과하고 나머지 61%는 용도 미정이거나 폐사 처리된다. 외국의 경우 경주마의 우승상금 3%가량을 퇴역 경주마의 복지자금으로 적립한다. 우리나라도 경주마의 퇴역 후 이력제와 복지 시스템 도입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제주 유명 관광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초지에서 퇴역 경주마 또는 승용마로 추정되는 한라마 두 마리가 올가미에 묶인 채 불법 도축 직전 구조됐다. 구조된 두 마리 모두 임신한 상태로 동료 말들의 도축 현장을 지켜봤다. 불법 도축한 말의 뼈는 뼛가루나 엑기스로, 고기는 반려견의 간식인 육포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도축업자는 불법 도축이 관행적 행위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비육마가 아닌 말을 도축하는 것은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이다. 지난여름에는 충남 부여군 폐목장에서 방치된 채 죽어가던 퇴역 경주마 ‘별밤’이 구조돼 제주 말 구조 보호센터로 옮겨졌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게다가 사람을 태우는 오랜 노동으로 뒷다리가 심하게 부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별밤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경마장에서 경주했다. 이후 10년간 여러 승마장을 전전하다 버려졌다.

말들이 풀을 먹고 있다. ‘아그작, 아그작’ 풀 씹는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김 대표가 간식을 주며 말들을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김남훈 대표가 청해마인 모리스(4세)를 꼭 안아주고 있다. 모리스는 사람을 특히 좋아한다.

말 구조 보호센터에서 김 대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들의 끼니를 챙기며 바쁜 하루를 보낸다. 매일 직접 재배한 신선한 풀을 제공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관리한다. 정성을 다해 보살핀 결과 말들은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말들이 김 대표 옆에서 하나, 둘 누워 낮잠을 청했다.

별밤이의 눈 주변이 부풀어 있다.
김 대표가 이른 아침 기초체력을 위한 승마 훈련으로 온몸이 땀에 젖은 ‘모모’를 물을 뿌려 씻기고 있다.
따로 관리가 필요한 말들은 무리와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김 대표가 말 구조 보호센터 인근 야초지에서 지내고 있는 ‘맥스(8세)’ 앞 물통에 물을 채우고 있다.
김 대표가 말 구조 보호센터 사연을 알게 된 한 후원자가 보낸 손 편지를 읽고 있다.

말 구조 보호센터에는 종종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자원봉사자, 몸이 아픈 환자, 애니메이션 작가, 음향감독 등 구조된 말들의 사연만큼 방문객들도 다양하다. 이들은 “말들을 도와주러 왔는데 오히려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따뜻한 손길이 상처받은 말들에게 전해져 어느새 곁을 내어준다. 사람과 말이 교감하며 서로를 치유한다. 말 구조 보호센터는 인간을 위해 평생을 달린 말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쉼터다.


제주=글·사진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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