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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문어발 행정, 선택과 집중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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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26 00:17:48 수정 : 2023-05-26 00: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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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퓰리즘(毛+포퓰리즘)’. 최근 일부에서 벌이는 탈모 지원 정책을 비꼬는 말이다. 부산 사하구의회는 이달 청년들의 탈모 치료제 비용을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서울시의회에도 비슷한 조례안이 발의됐다. 서울 성동구는 만 39세 이하 구민에게 탈모 치료제 비용을 연 20만원까지 준다. 충남 보령시도 만 49세 이하 시민에게 연 50만원까지 지원한다.

이 정책을 내놓은 이들은 ‘탈모의 괴로움’을 든다. 탈모 차별이 생애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혈세 투입의 근거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외모·조건의 차이가 부당한 우열 나누기로 이어져 삶을 그늘지게 하는 사례는 탈모만이 아니다.

송은아 사회2부 차장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정도는 덜해도 탈모 지원처럼 물음표가 드는 정책이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 한 자치구는 1인가구 청년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과일을 배달했다. 서울시도 지난해 전입 청년 6000명에게 ‘웰컴박스’라며 식기나 공구를 선물했다. 반려견 교육, 반려식물 병원 운영, 정리정돈 수납 서비스도 ‘공무원은 과부하를 호소하는데 굳이 민간영역까지 넘봐야 하나’ 싶은 과한 행정이다.

이들 사업에 큰 예산이 드는 것은 아니다. 반려견·반려식물을 복지 사각지대만큼 중요시하는 ‘주민 수요’도 있을 수 있다. ‘저기는 이런 거 준다는데 우리는 안 주나’라는 주민들의 말을 지자체가 외면하긴 힘들다.

이런 이유들이 쌓이니 지자체 행정이 방향성 없이 문어발처럼 뻗어나가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시혜성 복지경쟁이 이어진다. 공공부문이 자애로운 부모라도 된 듯하다.

문제는 국가 전체의 비효율이다. 공공부문 말단에서 시급하지 않은 정책들이 덕지덕지 느는 사이, 정작 근본적인 과제들은 해결될 기미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저출산과 지역 소멸, 이로 인한 교통·의료·교육 불균형이 대표적이다.

교통만 해도 수도권은 ‘지옥철’로 고생인 반면, 지방은 시외버스가 사라져 중소도시들이 섬처럼 고립되고 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멈춰선 시외버스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시외버스 노선은 2019년 3555개에서 2021년 3015개로 줄었다. 아침 6시30분 하루 한 번 운행하는 ‘유령노선’들이 끼어 있기에 실제 감소폭은 더 크다. 정부 한 고위관료는 이를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된 좋은 계기’라고 했다.

구조조정의 고통은 교통약자의 몫이다. 시외버스가 떠난 교통 사각지대는 그대로 방치돼 버렸다. 일부 수요응답형 버스나 공공형 택시가 운행하지만 면·군 단위 이동이나 가능하다. 시골 어르신이 도시 병원에라도 가려면 고행의 연속이다.

공공부문의 역할은 시장 실패의 보완이다. 시장에 맡겨도 되는 탈모, 식물병원 대신 지역소멸과 저출산의 부작용처럼 시장이 답을 줄 수 없는 근본 과제에 정부가 더 에너지를 쏟았으면 한다.

물론 중앙과 광역·기초단체별로 사무가 나뉜 구조에서는 비효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앙 정부는 지역 사정을 모른 채 책상물림같은 정책을 내놓고, 지역은 당장 눈가림하기 좋은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수록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한 행정서비스의 선택과 집중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게 중앙·지방정부의 존재 이유다.


송은아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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