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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아름다움’…한국미를 발굴한 일본민예관 <1> [일본 속 우리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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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29 10:00:00 수정 : 2023-07-17 15: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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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설립…소장품의 10% 가량이 한국 유래 예술품
“민예관 석공예 소장품, 한국 미술사의 공백 메울 중요성”
설립자 야나기, 미의 창조자 민중·일상품의 아름다움 주목
“일본 예술의 원류 조선, 세계예술 최고의 영예 충분”
일본도쿄 메구로구 일본민예관.

27일 일본 도쿄 메구로구 일본민예관, 티켓 창구 앞으로 관람객들의 작은 줄이 만들어졌다. 일본인들이 많지만 한국인, 서양인도 몇 명 있다. ‘아름다운 칠(漆)’ 전이 열리고 있는 대전시실, 견학을 온 것인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젊은 일본인 여성들이 전시품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북적이고, 약간은 소란스러운 민예관의 풍경을 한국인이라면 뿌듯하고 반가워해도 좋다. 

 

1936년 문을 연 민예관은 일본, 중국,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의 예술품 1만7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약 10% 정도인 1600여 점이 한국 유래의 것이다. 수량이 많거니와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야나기 무네요시.

설립자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은 한국 예술품을 깊이 사랑했고 그것의 아름다움, 우수성을 세계 최고의 것으로 여겼다. 한국 예술품과의 만남은 민중을 미(美)의 창조자로 인식하고, 미적 가치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던 일상용품의 예술성에 주목해 ‘민예’(民藝)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계기이기도 했다.    

 

민예관은 지금도 상설 전시실 하나를 한국 예술품으로 채우고 있고 건물 곳곳에 배치해 뒀다. 대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의 주역일 때도 많다. 6월까지 진행되는 ‘아름다운 칠’ 전의 부제는 ‘일본과 조선의 칠공예’다.

일본민예관이 6월까지 진행하는 ‘아름다운 칠’ 전시회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일본에서 민예관은 한국의 미를 알리는 중요한 거점이다. 그 곳의 북적거림에 반갑고, 뿌듯해할 수 있는 이유다. 

 

◆“꿈도 꾸지 못했다”, 조선백자와의 만남

 

1914년 아사카와 노리타카가 선물로 가져온 백자청화초화문각호(白磁靑畵草花文角壺)와의 만남은 야나기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차가운 토기에서 인간의 따뜻함, 고귀, 장엄을 읽으리라고는 어제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야나기의 고백이다. 

일본민예관에 전시 중인 백자청화초화문각호.

2년 후인 1916년 8월 처음 한국을 찾았다. 1940년까지 모두 21번 방문해 부산, 경주, 담양, 광주, 서울, 개성, 평양 등 각지를 돌며 한국 예술품을 직접 보고 연구했고, 수집했다. 당시 한국인들 스스로 알지 못했고, 혹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던 한국 예술의 아름다움을 발굴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것들이 민예관의 근간이 됐다. 한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4년 12월~2015년 9월 5차례에 걸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민예관소장 한국 예술품은 약 1600점이다. 

일본민예관 소장 분청사기철화모란문장군.

도자기가 약 600점으로 가장 많다, 17~19세기 후반의 조선의 것이 주축이다.

 

“그는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 중에서도 소박한 자연미를 드러낸 지방요 도자기를 선호하였다. 좌우 비대칭이며 다소 거친 흙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도자기가 그의 미감에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인의 미감인 와비(侘·검소하고 차분함), 사비(寂·고요하고 쓸쓸함), 그리고 불균형한 파격의 미에도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민예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족적이고 세련된 아름다움의 고려청자는 예외적인 사례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옷장, 필통, 나전칠기 등 목공예품이 약 400점으로 민간의 생활도구가 주를 이룬다. 약 200점으로 파악된 회화는 민화가 중심이다. 역시 약 200점 정도인 석물에 대해서는 “이 정도 많은 수량의 석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는 해외박물관은 없을 것이다. 한국미술사에서 간과되어 공백으로 남아 있는 19세~20세기 초의 석공예사를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는 평가가 인상적이다. 금속공예품, 종이공예품이 각 100점으로 파악됐다.

 

야나기는 직접 현장을 찾아 장인을 만나고, 제작 환경을 확인했다. 종류, 시대별로 빠짐없이 모으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미감이나 취향에 따라 수집 대상을 선택했다. 서민들이 사용하는 이름없는 민예품이 주대상이었다. 큰 돈을 들여, 도굴꾼을 사주하다시피해 고분 석물, 매장문화재 등을 긁어 모으고 귀족적 아름다움이 현저한 고려자기에 열광했던 여느 일본인 수집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런 가치는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반갑다 우리민화전’에 다수의 민예관 소장품이 출품됐다. 2006년 일민미술관은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과 일본전’을 개최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전’이 열렸다.

 

◆“자유 원천삼은 한국 예술, 세계 최고의 영예 충분”

일본민예관 소장 소상팔경도.

야나기가 한국 예술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민화, 도자기, 석물, 목공예는 곁에 두고 마음의 행복을 느낀다고 했는데, ‘구애받지 않음’을 특성으로 꼽았다. 그것은 굳이 새로움을 구하지 않음이다. 남의 평가에 무신경하다.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런 일에 개의치 않는 심경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즉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자유롭고 옹색함이 없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무성의하고 만사에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좋게 말하면 무슨 일에나 무심하고 집심(執心·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불이’(不二)의 경지에 달해 있어 마음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자유에 조선 작품의 아름다운 원천이 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진위정사’(眞僞正邪·참과 거짓, 옳고 그름)의 초월, ‘무법’(無法), ‘무심’(無心) 등도 야나기가 한국 예술품에 붙인 수식이다. 마음에 번거로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 예술품이 펼쳐내는 불가사의한 세계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야나기는 생각했다. 

 

관심, 사랑과 비단 민예품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야나기는 양국을 대표하는 예술품을 비교하며 한국의 것을 윗길로 놓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불가사의의 영역에 위치시켰다.  

 

야나기는 우선 일본의 예술이 한국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선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일본의 문명이 조선의 미를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만은 불변의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국보에서 조선의 작품 또는 그 유풍을 전한 것을 제외해 버린다면 얼마나 남는 것이 적고 초라한 것이 되겠는가”라고도 적었다. 

 

이럴 때 야나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대로 향한다.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은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절에서 오랫동안 비전(祕傳) 되어 온 “관음의 입상도 그 양식에 있어서나 미에 있어서 틀림없는 조선의 작품이 아닌가”라고 확신했다. 주구지(中宮寺)나 고류지(廣隆寺)의 미륵반가상을 두고는 “중국을 모방하고 있으나 틀림없이 조선에서 전래했을 것”이라고 했다. 

 

양국의 예술품을 비교하며 한국의 그것을 일본 위에 두는 태도가 가장 선명한 것이 석굴암 본존불과 가마쿠라 대불(大佛)의 비교다. 

석굴암 본존불과 가마쿠라 대불.

“우리는 일본에서 이(석굴암 본존불)와 견줄 만한 대불을 찾아볼 수 없다. 가마쿠라의 대불은 예로부터 미모로 알려져 있으나 아름다움에 있어서나 위엄에 있어서 도저히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야나기는 석굴암을 “동양의 종교 및 예술의 귀결”이라고 평가했다. 본존불을 둘러싼 10대 제자의 조각에 대해선 “이처럼 내면의 깊이와 신비를 잘 나타낸 불교 예술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석굴암 가장 깊숙한 곳에 새겨진 관음상에는 “영원한 마음의 증거”라는 감탄을 바쳤다. 고려청자를 두고서는 “세계의 도자기 중에서 독자적인 존재로 군림”,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불가능한 그 무엇이 있다”고 놀라워했다.

 

야나기의 한국 예술에 대한 평가는 이런 선언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은 세계예술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에 충분하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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