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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저출생 극복 노력하면 성평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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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26 22:48:58 수정 : 2023-05-26 22: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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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수여하는 ‘성평등상’이 올해 20회를 맞는다. 최근 5년간 ‘n번방 방지법’과 양육비이행법 개정을 이끈 한국여성변호사회, 문단 내 성폭력 실태를 고발해 ‘미투(#Me Too)’ 운동을 확산시킨 최영미 시인 등 성평등 문화 확산에 공적이 있는 시민·단체가 대상을 수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상을 고발한 고(故)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도 이 상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성평등상 시상 계획을 보면 상의 취지가 흐려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저출생 문제 극복 노력’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철폐와 양성평등 촉진 확산’ ‘젠더폭력 근절과 인권보호, 경력단절 여성 경제적 역량 강화’ ‘돌봄환경 개선과 일생활 균형 기반 구축’ 등 공적분야가 3개였다.

이규희 사회2부 기자

성평등상의 하위 분야로 저출생 극복 분야를 두는 이유가 의아하다. ‘저출생 극복에 기여했다면 폭넓게 봐서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출생률이 오른다고 성별에 따른 차별과 편견, 폭력이 사라질 리가 없어서다.

시는 “시정 기조를 담아낸 결과”라고 설명한다. 시민상 운영 조례에 세부 시상분야까지는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따라 가치판단을 개입시킬 수 있는데, 저출생 위기 극복에 집중하는 최근 시정 방향성에 맞춰 저출생 관련 활동을 충실히 해온 개인·단체를 독려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 시는 최근 저출생 대책에 힘을 쏟고 있다. 난임부부 지원과 산후조리비 지원 계획 등을 연달아 발표하고 2026년까지 4년간 약 426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다자녀 기준을 완화해 지원을 확대하고 9월부터는 육아 조력자에게 월 30만원의 돌봄 수당을 준다고 한다.

저출생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만큼 아이 키우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는 건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 많은 대책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시민, 특히 여성에게 전향적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평등에 대한 비전이 빠진 ‘출산 장려’ 수준의 대책에 머물러 있어서다.

국내외 다수의 연구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지적한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지난해 내놓은 ‘출산율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 보고서에 따르면 출생률 높이기의 핵심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다. 공공보육 등 가족정책과 남성이 기여하는 육아문화, 일하는 엄마에 대한 호의적인 사회 규범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지적대로라면 여성이 자녀 돌봄의 전담자가 되는 사회적 압력부터 개선해야 할 텐데, 국내에선 여전히 이런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성 경력단절 문제 등 성차별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개발도 더디기만 하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 노력하면 성평등상을 준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발상의 배경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핵심은 저출생과 성평등의 관계를 엮어낼 철학의 빈곤함이다. 성평등이라는 정공법을 외면한 채 이런저런 미시적인 정책들로 출생률이 오르기만 기대해선 안 된다.


이규희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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