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우발적 충돌』 스티븐 로치 “정치적 편의성 좇아서 미중간 ‘거짓 서사’ 확대 재생산됐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3-10-04 07:30:00 수정 : 2023-10-02 16:58:43

인쇄 메일 url 공유 - +

현재 미국과 중국 관계는 무역 전쟁과 기술 전쟁, 더 나아가 신냉전 위기라는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양국 관계는 협력 관계나 동반자 관계였다. 특히 경제와 무역이 두 나라 관계를 중심에서 지탱해 왔다.

 

그러니까 1980년대, 미국은 경기 침체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고, 중국 역시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개혁 개방과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새로운 성장 루트와 전략을 찾고 있었다. 두 나라간 이해가 잘 맞아 떨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 기업은 생산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리는 한편 미국 내 물가는 안정돼 더 나은 소비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중국도 급증하는 대미 수출에 힘입어 1978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10퍼센트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눈부시게 도약했다. 이 기간 1인당 국민소득도 10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국 관계의 흐름이 바뀌었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국내적으로 거시경제 불균형이 가시화했고, 대외적으론 무역 상대국과 긴장을 초래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수출주도 성장에도 한계가 닥치면서 소비 중심의 경제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예상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미국 역시 저축 및 국제 수지에서 불균형이 커졌다. 저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큰 폭의 국제수지 적자를 감수하며 자본을 유입시켰던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치적 편의성’만을 좇아서 서로에 대한 ‘거짓 서사’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양국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했다. 거짓 서사들이 미중 갈등을 고조시키는 강력한 연료로 쓰인 것이다.

 

우선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표적인 거짓 서사는 중국 때문에 무역 적자가 증가했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현재의 경제 침체는 중국과의 무역과 함께 중국의 불공정하고 약탈적이며 불법적이기까지 한 경제공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정치인과 관료들이 정치적 편의성을 좇아 앞장서고, 언론의 자유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배경으로 양극화된 의견들이 증폭됐다.

반대로 미국에 대한 중국의 거짓 서사는 중국의 성장과 발전을 미국이 방해하고 억제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무역 전쟁이 미래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서사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검열 제도에 의해서 진짜 서사와 거짓 서사간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정보는 더욱 왜곡된다.

 

경제와 무역보다 안보를 더 중시하는 등 과거와 달리 이념화된 양국 상황도 갈등을 되돌릴 수 없는 차원으로 밀어 넣었다. 중국 지도자 시진핑은 ‘중국몽’을 천명하면서 미중 갈등을 이념대결 차원에서 바라보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 위협을 끝없이 강조하면서 갈등을 부채질했다. 새로 집권한 바이든 역시 거짓 서사를 털어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신작 『우발적 총돌』 (이경식 옮김, 한국경제신문)에서 심화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면서 두 나라간 거짓 서사에 의해서 확대 증폭된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30여 년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고, 미중 경제 전략을 다룬 『G2 불균형』 과 아시아 미래를 예측한 『넥스트 아시아』 를 펴낸 아시아통이다.

 

저자에 따르면, 거짓 서사는 애초에 거짓임을 알면서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대중의 인식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진실과 다른 서사를 가리킨다. 가짜 뉴스보다 생산자의 의도가 보다 강하게 개입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

거짓 서사는 일부 사람들의 ‘정치적 편의성’ 때문에 만들어진 뒤, 온라인 공간이나 여론 매체를 통해서 확대 증폭된다. 사람들은 거짓말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인 76퍼센트는 중국과 중국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주요한 ‘정치적 편의성’은 바로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의 진짜 문제로부터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실 미국과 중국이 처한 상황의 근본 원인에는 저축률이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즉, 미국은 지금 당장 소비하고 저축은 나중에 하자는 문화에 저축률이 너무 낮고 부채가 너무 많은 반면, 중국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저축률이 과도하게 높고 소비는 저조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점점 악화하는 미중 갈등을 푸는 방법으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문제 해결의 시작으로 서로에 대한 거짓말로 깊게 뿌리박힌 환영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서로 피해자 행세를 멈추고 자국의 내실을 다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양국 사이의 투자 장벽을 친성장 지향의 양자 투자조약을 체결하고, 셋째, 미중사무국이라는 새로운 상설 조직의 설립해 운용하라고 제안했다.

미군의 훈련 모습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되지 않는 사실 중 하나는 이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며 언제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핵심적인 주요 국가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두 나라는 앞으로도 계속 거짓 서사들에 매달릴까, 아니면 그것들을 극복할까?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영구화할까, 아니면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까? 이는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양국 관계의 전망을 묻는 결정적인 질문이다.”(524쪽)

 

아시아통인 저자는 작금의 미중 갈등 상황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향도 조언한다. 즉,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로선 중국과의 연결성을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의 안보 우산을 버릴 수도 없다며 미중 어느 한쪽에 대한 지지보다는 두 나라간 갈등 최소화에 노력하는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경제적인 차원의 고려와 안보적인 차원의 고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일은 어떤 나라라도 쉬운 일이 아니며, 한국은 특히 더 그렇다. 내가 한국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갈등하는 두 나라의 어느 한쪽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서기보다는 갈등의 고조를 늦추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상호 노력을 지지하는 접근법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14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최지우 '완벽한 미모'
  • 최지우 '완벽한 미모'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