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25일 혹한의 날씨에 당시 이석구 기무사령관(육군 중장)을 비롯한 국군기무사령부 부대원 600여명이 국립현충원에 도열했다. 그러고는 ‘洗心水’(세심수)라고 큼직하게 써 붙인 수조에 담긴 물로 손을 씻는 의식을 가졌다. 인터넷상에서 ‘정치 댓글’을 단 행위가 적발되자 엄정한 정치적 중립 준수를 다짐하며 기독교의 세례(洗禮) 등 종교 행사 의식을 차용해 벌인 이벤트였다. 엄동설한에 적폐청산의 의지와 비장함을 보이려 했건만 오히려 비웃음이 컸다.
기무사의 모체는 1948년 만들어진 국방경비대의 육군정보처 특별조사과였다. 이후 특무부대, 방첩부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 개편됐다. 보안사는 12·12 군사쿠데타의 주축 역할을 했고, 그 결과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군내 보안과 정보수집을 앞세워 군 안팎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1991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가 있고 나서 국군기무사령부로 변신했다.
2018년 7월 이철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이란 8쪽짜리 문건을 공개했다. 기무사 ‘계엄 문건’ 파동의 시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 친위쿠데타 음모를 꾸몄던 것처럼 몰아갔다. 하지만 내란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다. 수사 결과도 보지 않은 문 대통령이 조직 개편을 지시하자, 기무사는 군사안보지원사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했다.
윤석열정부 들어 2022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로 거듭났지만 이번에는 비상계엄의 중심에 섰다. 국방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 및 요원을 파견한 방첩사 소속 장성 2명에 대해 8일 직무 정지 조처를 했다.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계엄군 지휘관 3명에 대해 직무 정지를 단행한 지 이틀 만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고 계엄군의 위헌적 무력행위를 주도한 조직을 사실상 방첩사로 지목한 셈이다. 여러 차례 부대 이름을 바꾸고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의 상징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이번에는 어떻게 명맥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