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역사 자랑 샴페인 명가 루이 로더레/유라시아 대제국 건설 로마노프 왕가 알렉산드르 2세 요청 1876년 ‘크리스탈’ 탄생/크리스탈 로제 탄생 50년 7대손 프레데릭 루조 인터뷰

신선한 야생딸기와 라즈베리. 시간이 지나면서 활짝 피어나는 싱그러운 크고 하얀꽃향. 그 위에 더해지는 아몬드와 캐러멜. 그리고 입안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신선한 산도와 세련된 질감, 깊이를 알수 없는 오묘한 복합미까지. 마치 당대 최고 발레리나가 우아한 동작으로 무대 위에 존재감을 뽐내는 듯합니다. 250년 가까운 세월 오로지 샴페인만 빚은 장인의 손맛은 역시 뭔가 특별하군요. 백악질 토양에 깊게 뿌리박은 80년 수령 포도로 떼루아를 그대로 담는 자연주의 와인 크리스탈. 황제가 사랑한 와인을 찾아 프랑스 상파뉴로 떠납니다.

◆로마노프 왕가와 크리스탈
로마노프 왕가는 1613년부터 1917년까지 304년간 러시아를 통치하며 발트해와 흑해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러시아 대표 왕가입니다. 그중 알렉산드르 2세는 1855년부터 1881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대개혁기’를 이끈 황제로 유명합니다. 부친 니콜라이 1세때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만투르크 연합군과 벌인 크림 전쟁(1853년∼1856년)에서 패한 뒤 황제에 오른 알렉산드르 2세는 대대적인 국가 개혁에 나서게 되지요. 특히 농노해방령을 공포해 ‘해방 황제’로 불리게 됩니다. 또 자유주의 개혁 정책을 펼쳐 재정, 고등교육, 지방자치, 사법, 군사 분야를 개혁해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끕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개혁은 국민과 이념갈등을 불렀고 결국 1881년 3월 혁명 세력의 폭탄 테러로 사망한 비운의 황제로 남게 됩니다.

알렉산드르 2세는 평소 샴페인을 즐겼는데 루이 로더레(Louis Roederer) 샴페인 하우스의 와인을 가장 사랑했다고 합니다. 루이 로더레는 황제만의 존엄성을 갖춘 샴페인을 공급해 달라는 황실의 요청에 따라 1876년 특별한 샴페인을 만들게 됩니다. 병목에 황실의 문양을 새겨 넣고 투명한 크리스탈 보틀에 와인을 담은 루이 로더레 크리스탈(Cristal)이랍니다. 루이 로더레에 맛과 향에 흠뻑 빠진 황제는 매년 최고의 뀌베를 자신을 위해 남겨두도록 요청합니다. 루이 로더레는 이 뀌베를 구별하기 위해 납유리(lead-crystal)로 만든 납작한 바닥의 투명하고 빛나는 병에 와인을 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샴페인은 ‘크리스탈’이란 이름을 얻게 됩니다. 크리스탈은 100년 넘게 러시아 황실에 공급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상파뉴 포도 품종
샴페인의 뛰어난 산미와 미네랄은 품종과 토양 덕분입니다. 삼페인을 만드는 품종은 주로 세가지. 레드품종 피노누아(Pinot Noir), 피노 뮈니에(Pinot Meunier), 그리고 화이트 품종 샤르도네(Chardonay)입니다. 이것만 알아도 어디가서 ‘아는 척’ 좀 할 수 있으니 꼭 기억해 두세요.
세 품종 중 가장 중요한 품종을 꼽으라면 샤르도네입니다. 샴페인에 가장 중요한 산도와 신선한 과일풍미를 담당하기 때문이죠. 또 세 품종 가장 늦게 수확하는 만생종으로 와인에 미네랄을 듬뿍 더해줍니다.
여기에 가장 파워풀한 피노누아가 들어가면 와인이 탄탄해집니다. 피노누아는 샤도네이와 피노뮈니에 중간에 수확하며 붉은 과일향이 많아 와인에 확실한 아이덴티티와 캐릭터를 부여합니다.
피노 뮈니에는 피노누아처럼 강렬함은 덜하지만 약간 씁쓸한 느낌과 부드러움을 부여합니다. 또 피노 뮈니에는 세품종중 가장 빨리 수확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풍부한 과일향과 꽃향이 잘 살아있습니다. 과일은 하얀 과일쪽에 가깝고 피노뮈니에는 와인에 섬세함도 줍니다.

◆상파뉴 토양과 미네랄
상파뉴의 토양은 크게 쵸크(Chalk·석회토), 키메르지안 말(Kimmeridgiand Marl·이회토), 모래, 진흙 4가지입니다. 이중 상파뉴 생산자들이 최고의 토양으로 꼽는 것은 쵸크 토양. 최고 품질의 샤르도네가 바로 쵸크 토양에서 재배되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은 산도가 가장 중요한데 석회토양에서 자란 포도들이 우아한 산도 미네랄을 움켜쥡니다. 쵸크토양은 약간 축축할 정도로 습기도 머금어 샴페인을 숙성시키고 보관하는데 최적의 자연 셀러 역할도 합니다. 석회토양은 쵸크와 라임스톤이 있으며 쵸크가 조금 더 미세한 구멍이 많아서 쵸크토양에서 포도를 재배하면 훨씬 더 가볍고 산도 높은 포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쵸크는 해양미생물의 껍질에서 나온 석회석 알갱이라 당연히 미네랄도 풍부합니다.

◆백악질 떼루아를 그대로 담다
이런 백악질 떼루아들 그대로 담아 명품 샴페인을 선보이는 와이너리가 ‘황제의 샴페인’ 루이 로더레입니다. 루이 로더레 크리스탈 로제 탄생 5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7대손 프레데릭 루조(Frederic Rouzaud)과 ‘블렌딩의 마법사’로 불리며 셀러 마스터로 활약하는 장 바티스트 레까이용 (Jean-Baptiste Lécaillon)과 황제가 사랑한 샴페인의 매력을 따라갑니다. 루이 로더레는 에노테카 코리아가 수입합니다.

프레데릭은 백악질 토양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오가닉 농법을 선택했다고 강조합니다. “루이 로더레 크리스탈은 1876년 오로지 러시아 황제를 위해서만 만든 와인이죠. 와이너리 역사가 1776년에 시작됐으니 그때가 이미 100년동안 와인을 빚은 시점이었는데 오로지 황제를 위한 와인을 만든 것은 크리스탈이 처음이랍니다. 이런 최고의 샴페인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한 토양은 상파뉴에 많이 분포된 백악질 토양(쵸크 Chalk)입니다. 크리스탈은 100% 백악질 토양에서만 자란 포도로 만들어요. 와인이 굉장한 집중도를 보여주고 우아하면서 복합적이고 신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루이 로더레의 포도밭은 100% 오가닉 인증을 받았습니다. 살충제 등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죠. 오가닉 인증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살충제를 쓰면 와인에서 백악질 떼루아를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살충제를 쓰지 않으면 버섯, 지렁이, 박테리아 같은 다양한 토양 생물과 미생물도 보존됩니다.”

백악질 토양은 글로벌 워밍 등 기후변화에도 잘 견디는 성질이라는 점도 장점입니다. “쵸크 토양은 좀 차갑고 항상 약간 젖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표면이 좀 덥다고 하더라도 뿌리쪽은 항상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어요. 또 칼슘을 잘 빨아들이면서 우아하고 신선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포도나무가 백악질 토양에 깊게 자리 잡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장 바티스트는 밀도 높은 포도 재배방식과 올드바인이 뛰어난 샴페인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강조합니다. “루이 로더레 포도밭 특징은 밀도가 굉장히 높다는 점입니다. 상파뉴는 대부분 1ha당 8000그루를 심는데 우리는 1만~1만3000그루를 심어요. 그래서 포도나무 자체가 좀 작게 자라며 한 그루당 포도송이도 적게 열리죠. 덕분에 아로마의 집중도가 굉장히 좋은 포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집중도가 좋아야 백악질 토양을 더 잘 보여주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답니다. 더구나 20년 수령의 포도는 사용하지 않고 20년 수령을 넘은 포도만 와인으로 만듭니다. 크리스탈의 경우 평균수령은 43년이고 가장 오래된 수령은 80년도 있답니다.”


장 바티스트는 ‘마샬 셀렉션(Massal Selection)’으로 재배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떼루아를 더 정확하게 와인에 담고 복합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떼루아에 가장 잘 맞는 포도나무를 선별해 식재하는 방식입니다. “특정 클론만을 번식시키는 클론 셀렉션(Clonal Selection)과 달리 다양한 유전형질을 가진 포도나무를 함께 재배합니다. 이렇게 하면 포도밭의 유전적 다양성을 높여 병충해 저항력을 강화할 수 있답니다.”

상파뉴에는 크뤼급 포도밭이 300여개 있는데 루이 로더레는 이중 17개의 그랑크뤼 포도밭 240ha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상파뉴에선 포도밭을 매입하기 정말 힘듭니다. 포도밭은 3만ha에 불과한데 생산자는 무려 1만5000명이죠. 생산자 1명당 불과 1.5ha를 보유한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240ha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루이 로더레를 설립한 선조에게 정말 감사한답니다. 와인의 80%는 좋은 포도에서 나온답니다. 그런 좋은 포도밭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최소한으로 개입해서 와인을 만듭니다.”

◆샴페인의 거인 크리스탈
크리스탈 2007 빈티지는 피노누아 58%, 샤르도네 42%입니다. 보통 6년 정도 병숙성 기간을 거칩니다. 그는 크리스탈의 별명을 ‘샴페인의 거인’으로 소개합니다. “크리스탈은 결점이 없고 굉장히 하모니가 좋습니다. 그리고 숙성도 아름답게 잘 되고요. 또 신기한 것은 더 오래될수록 좀 더 영해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숙성잠재력도 굉장히 뛰어난데 20년 정도 숙성하게 되면 3차향이 많이 나옵니다. 2007 빈티지는 카라멜, 헤이즐넛 같은 스모키함이 더해지면서 굉장히 복합적인 풍미가 피어나는 군요. 이제 활짝 꽃을 피우는 느낌이네요. 크리스탈은 처음에 출시될때는 미네랄리티가 강조되고 숙성을 하면 이처럼 3차향이 많이 나옵니다. 백악질 토양이 굉장히 순수하게 표현돼 있고 신선함도 느껴집니다. 크리스탈은 항상 피노노아가 좀 더 많이 들어갑니다. 입안에서 풍부하게 퍼지는 느낌을 주고 집중도를 강조하기 위해서죠. 여기에 샤르도네는 섬세함과 우아함을 더합니다. 포도즙의 15%는 큰 오크통해서 발효했는데 오크 느낌은 전혀 없어요. 과일향이 잘 살아있고 백악질 토양을 잘 보여줍니다.”



◆크리스탈 로제 탄생 50년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블렌딩하는 크리스탈 로제는 갓 수확한 듯한 톡 쏘는 야생딸기와 농축된 라즈베리가 도드라집니다. 온도가 오르면서 신선한 아몬드, 빵, 코코아콩의 향신료가 섬세하면서도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크리미한 버블과 풍성한 미네랄도 돋보입니다. 크리스탈보다는 좀더 파워풀합니다. 크리스탈은 뾰족한 산도를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젖산발효(말로라틱퍼먼테이션)를 하지 않습니다. 2차 병발효와 숙성을 5~6년 정도 아주 길게 진행하는 덕분에 효모앙금이 풍성한 복합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장기숙성해도 산도가 잘 살아있는 이유입니다.

크리스탈은 일반 샴페인보다 기압도 낮춰 좀 더 오밀조밀하고 부드러운 버블을 선사합니다. “크리스탈 로제는 루이 로더레의 창의성과 경계를 뛰어 넘는 와인 메이킹을 보여줘 새로운 시대를 연 아주 특별한 와인입니다. 뛰어난 떼루아, 오가닉농법, 와인 메이킹의 노하우, 마샬 셀렉션 등이 모두 결합해 탄생했기 때문이죠. 보통 샴페인은 6기압인데 크리스탈은 5.2~5.5기압으로 낮아요. 기압이 낮을수록 버블 사이즈가 작아지면서 굉장히 우아한 샴페인이 만들어집니다. 기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따뜻한 해에는 기압을 0.2~0.5 정도 높여 생기발랄한 질감을 더하고 기후가 서늘한 해에는 반대로 0.5 정도 낮춰 크리미안 질감을 강조합니다.”


◆블렌딩의 마법사
루이 로드레는 베이스 와인으로 많은 빈티지의 리저브를 사용합니다. 샴페인은 다른 와인과 달리 자본력이 지배합니다. 따라서 많은 리저브급 와인을 확보하면 좋은 샴페인을 만들기 유리합니다. 샴페인은 품종별, 마을별, 빈티지별로 1차 발효한 베이스 와인을 따로 보관합니다. 셀러마스터가 이 베이스 와인들의 맛을 보고 블렌딩 비율을 결정합니다. 이를 아상블라주(Assemblage)라고 하는데 블렌딩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샴페인 하우스의 명암 갈립니다. 어차피 샴페인은 블렌딩해서 만들기 때문에 자본력과 기술력이 좋으면 좋은 리저브 와인으로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루이 로드레는 이처럼 최고급 샴페인 생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리저브급 와인을 80만ℓ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반 샴페인은 리저브급 와인 3~5개 빈티지를, 고급 샴페인은 5~7개 정도 사용합니다. 리저브급 와인은 전용 셀러에서 숙성시키며 장기보관하는데 관리비용이 매우 많이 듭니다. 하지만 샴페인에 깊은 풍미와 복합미를 부여하고 매년 일관된 고품질의 샴페인을 생산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루이 로더레는 5∼15년 숙성된 리저브급 와인을 40% 넘게 사용합니다. 특히 50개의 서로 다른 포도밭 구획에서는 나온 첫 포도즙, 뀌베(Cuvee)로 블렌딩해 샴페인의 복합적인 풍미가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루이 로드레 컬렉션은 오크 발효·수성한 리저브 빈티지 정보를 백레이블에 담아 소비자들에게 정보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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