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란 말 때문에 고령층에서만 관심
학생들 ‘고속노화 식단’에 너무 노출돼
식습관 형성되는 어릴 때 바로잡아야
최근 중장년층 사이에서 ‘저속노화’ 식단 열풍이 불고 있다. 세포 손상과 염증을 억제하고 신진대사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나이 들기 위한 식단이다. 이런 저속노화 식단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류인혁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말한 답은 ‘2살’이다. 류 교수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노화라는 말 때문에 ‘저속노화’ 식단이 고령층에 필요한 식습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속노화 식단은 소아·청소년에게 더 필요한 식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형성된 식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고 ‘고속노화’ 식단으로 질병이 생기면 아이들은 남은 80년을 아픈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많은 부모가 성장기의 아이는 어른보다 소화력이 떨어지므로 소화와 흡수가 잘되는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 교수는 이에 대해 “가장 잘못된 통념 중 하나가 소아는 흡수가 잘되는 백미를 먹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기본 지침은 만 2세 이상부터는 모든 곡물 섭취량의 50% 이상을 통곡물로 하라고 권고한다”고 밝혔다. 백미가 현미보다 소화가 잘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현미가 소화가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흡수돼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는 장점이 있다. 류 교수 역시 자녀에게 100% 현미밥을 먹이고 있다.
류 교수는 최근 ‘학원 뺑뺑이’로 많은 소아·청소년이 아침에 시리얼과 우유를 먹고, 저녁엔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햄버거 등을 먹으며 ‘고속노화 식단’에 길들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런 ‘고속노화 식단’ 탓에 많은 학생이 그의 진료실을 찾는다. 소아·청소년 비만 환자가 늘고 있고,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해 병원을 찾았다가 비알코올성 지방간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다.

류 교수는 “그동안 ‘성인병’으로 불렸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지방간 등이 이제는 청소년기부터 생기기 시작한다”며 “10∼12세에 이미 이런 합병증이 발생하면, 기본적인 식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평생 약을 먹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문제 되는 식단으로 화학적 첨가물을 넣어 인위적인 맛과 향을 내 보존 기간을 늘린 ‘초가공식품’을 지목했다. 과자와 도넛, 시리얼, 라면, 치킨 너깃, 탄산음료와 주스, 소시지 등이 포함된다. 이런 제품은 유통기한이 유난히 길고, 소르빈산, 벤조산나트륨, 아질산나트륨 같은 보존료와 이노시네이트, 구아닐레이트 같은 향미료가 적게는 몇 가지, 많게는 수십 가지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상품 겉면에 ‘균형 잡힌 영양소’, ‘하루 단백질 ○○% 함량’ 등의 문구가 있어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즐긴다.
“초가공식품은 당분과 첨가물이 너무 많아 장내 세균총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2000년 이전 국내에서는 크론병 환자가 나오면 케이스 보고가 나올 만큼 희귀했는데, 지금은 서구권과 비슷한 비율로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원인이 초가공식품입니다.”
저속노화 식습관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해야 한다. 중장년층과 달리 현재의 소아·청소년은 어릴 때부터 탄산음료, 햄버거, 과자 같은 초가공식품에 이미 길들어 있다.
“최근에는 초가공식품 섭취량을 하루 총열량의 10∼15% 이내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통계를 보면 이 비율이 30∼40%를 넘습니다.”
하루 2000㎉를 섭취한다고 가정하면, 초가공식품 섭취량은 300㎉ 이내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통 주스 하나와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어도 이를 훌쩍 넘긴다.
미국의 경우 이 비율이 50%를 넘었다. 국가 차원에서 이 비율을 줄이기 위한 여러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미 초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자연 상태의 식품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류 교수가 “1년이라도 빨리 (초가공식품 섭취와의 거리 두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탄산음료와 주스를 끊고, 집안에서 초가공식품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주스를 비타민이 포함된 건강식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과일은 비타민 등 영양소와 식이섬유가 함께 포함돼 있지만, 주스로 만들면 식이섬유와 영양분이 파괴되면서 과당 흡수만 더 잘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류 교수는 “해외에서 초가공식품의 비율을 줄이고 저속노화 식단을 확산하려는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은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미 습관이 되면 고치기 어려운 만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저속노화 식단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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