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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은밀한 살인, 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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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4 23:05:05 수정 : 2025-06-04 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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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사람의 영혼·육체 갉아먹어 병들게 해
지켜보는 이의 선량함 질식시켜 공동체도 훼손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주먹으로 쳐 버리겠다”라고 말로 위협하는 것과 실제로 주먹을 날려 코뼈를 부러뜨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해로울까? 물론 둘 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지만, 차라리 한 대 맞는 편이 낫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폭행은 상처라도 남아 있어 “폭행당했다”는 걸 남들에게 확인시켜 줄 수 있지만, 언어폭력의 상처는 보이지 않으니 피해자는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고통에 더해 억울함까지 감내해야 한다.

사전에는 언어폭력을 ‘말로써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욕설·협박 따위를 하는 일’이라고 적혀 있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훨씬 더 교묘하고 광범위하다. ‘거짓 소문이나 험담, 약점 들추기, 외모나 능력 비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카드값, 대출이자, 자녀 학원비를 책임져야 하는 직장인에게 회사를 그만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하는 언어폭력은 팔다리를 의자에 꽁꽁 묶인 채 구타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단순히 “스트레스받았다”라는 정도를 넘어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어폭력의 고통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피해자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다.

신체폭력이 육체를 손상시키듯 언어폭력도 실제로 몸을 병들게 한다. 직장인이 회식에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많이 마시면 간 기능이 저하되는 것처럼, 말폭력을 일삼는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간 기능이 나빠진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스트레스는 염증 반응 물질인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심장 혈관이 손상되기도 한다. 사려 깊지 못하고,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줄 모르며, 역량까지 떨어지는 리더 밑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25% 높아진다고 한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안나 뉘베르그 교수팀이 밝혀낸 연구 결과다.

권력 욕구와 통제 욕구는 강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언어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를 교묘하게 따돌리고, 험담하며, 정서적으로 고통을 줘서 복종하도록 만든다. 실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으니 말로 아랫사람을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순응하지 않는 부하에겐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노골적인 언어폭력으로 몰아붙여 결국 회사를 떠나게 만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료들은 어떻게 할까? “그건 부당합니다”라고 함께 저항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들 속으로 겁을 먹고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몸을 사린다. 폭언을 휘두르는 상사는 이런 심리를 꿰뚫고 있다. 하나를 찍어내서 전체를 통제한다.

상사가 부하를 괴롭혀서 내쫓는 건 조직원들에게 “나에게 충성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신호가 조직에 암묵적으로 퍼지고 나면 직원들은 저 스스로 순응한다. 실력이나 성과가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보스에게 잘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왜곡된 믿음이 화선지에 물이 스미듯 번져나가게 된다.

언어폭력은 직접 당하는 사람의 영혼과 육체만 병들게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의 선량함을 질식시키고, 결국 공동체의 생명력까지 갉아먹는다. 힘을 가진 자가 말로 휘두르는 폭력은 그래서 은밀한 살인인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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