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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어둠 속 미지의 세계… 1만년 전 지구와 교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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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30 21:00:00 수정 : 2025-06-30 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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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부터 제주 세계유산축전

미로형 벵뒤굴, 금빛 미생물 ‘황홀’
네발로 기어 낙석 틈 빠져나가면
사람 얼굴 닮은 동굴군서 인생샷
구불구불 통로 뱀 연상 ‘김녕사굴’
수천년간 해안서 날아와 쌓인 모래
용암동굴이 품은 석회 생성물 ‘신비’

붉은색에 가까운 주황색 탐사복(점프슈트)을 입고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한 뒤 랜턴이 달린 안전모까지 쓰고 나면 마치 미개척지 조사에 나서는 연구소 대원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들뜬다. 최소 1만년 전 지구의 모습과 직접 만나 교감할 수 있는 ‘동굴 탐사’는 늘 흥미롭다. 특히 여름철 동굴은 제주 조천읍 선흘리 벵뒤굴이 일품이다. 

벵뒤굴은 2층·3층 동굴과 석주, 석순 등 원형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만 바닥과 천장 사이 간격이 1m로 낮기 때문에 오리걸음을 하거나 손 짚고 기면서 탐사해야 한다. 세계유산축전 제공

길이 4481m 벵뒤굴은 화산 폭발 후 흘러내린 용암이 평평한 대지에 이르러 이리저리 길을 찾다 복잡하게 형성된 미로형 용암동굴이다. 지표면 가까이 만들어진 탓에 동굴 천장이 얇아 함몰된 입구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23개나 된다. 이 가운데 출입이 가능한 곳은 18곳이다. 그러나 중산간 오지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들은 동굴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입구 3곳에 철조망을 설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여전히 생성 중인 동굴 생태계를 보호하고, 전문가 동행 없이 갔다가 길을 잃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내부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2층형·3층형 동굴과 용암 석주, 용암 석순, 용암교, 용암 산호, 용암 표석 등 용암동굴의 전형적인 생성물들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다. 원형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8∼10명으로 이루어진 탐사 1개조가 진입할 땐 몸의 발열로 인한 수증기가 잠시 피어오른다. 30도를 넘는 바깥 온도와 13도인 동굴 내부의 온도차 때문이다. 에어컨을 켜 놓은 것만 같은 바람은 동굴 탐사의 또 다른 매력이다.  

 

흰빛이나 금빛을 띠면서 자라는 미생물이 많아 이동할 때는 벽면이나 천장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문지르거나 낙서를 하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복원되지 않는다. 

 

벵뒤굴은 낙반과 낙석 현상이 심하다. 특히 동굴 바닥과 천장 사이가 50∼100㎝로 낮은 낙반 지대가 나타나면 오리걸음이나 네 발로 기어서 전진해야 한다. 묵묵히 낙석 틈을 빠져나가면 사람의 얼굴 모습을 닮은 동굴군을 만나게 된다. 입 부분은 혀를 길게 내민 듯한 형태다. 이곳이 ‘탐사기념 인생샷’을 건지는 지점이다.

웅장한 통로를 가진 김녕굴은 바다 생물의 껍데기들이 쪼개져 만들어진 모래의 유입으로, 용암동굴 속에서 석회동굴 생성물이 만들어지는 희귀장면을 연출한다. 세계유산축전 제공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체험할 수도 있다. 안전모 랜턴과 손전등을 끄고 나면 눈앞에 손을 바짝 가져다 대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물론 깊은 산속 야밤에서도 경험해 볼 수 없는 ‘찐 어둠’이다. 짧은 성찰의 순간을 가질 수 있다.  

 

벵뒤굴 지상 주위에는 울창한 숲과 연못, 습지가 있고 동굴 내부에는 지상에서 장기간에 걸쳐 유입된 토사가 깊숙이 쌓여 있다. 박쥐의 배설물인 구아노 등 유기물도 제주도 내 다른 용암동굴에 비해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동굴 생물이 서식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제주관박쥐를 비롯해 알락곱등이, 줄지렁이, 제주굴아가미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벵뒤’는 순수한 제주어로 중산간 지역의 널따란 벌판을 뜻한다. 구좌읍 김녕리의 김녕굴은 총 길이 705m에 달하는 S자형 용암동굴로 생성 초기 만장굴과 연결됐지만 동굴 내부를 흐르던 용암이 통로를 막아버렸다. 통로가 구불구불해 뱀굴을 의미하는 ‘사굴’이나 ‘김녕사굴’로 불렀다.

 

동굴 높이 12m, 너비 4m로 통로가 웅장하게 넓지만, 중간층이 무너져 대부분 단층을 이루고 일부만 2층 구조다. 상류 끝부분에 높이 2m의 용암 폭포가 있다. 입구 쪽 바닥에는 해안에서부터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덮여 있다. 바다 생물의 껍데기들이 쪼개져서 만들어진 모래다.

 

조개나 전복 껍데기 모래의 탄산성분이 동굴에 유입된 덕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희귀장면이 연출된다. 용암동굴이면 용암동굴 생성물이, 석회동굴이면 석회석 동굴 생성물이 있기 마련인데, 용암동굴 속에서 석회동굴 생성물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용암동굴과 석회동굴 모습을 모두 지니게 됐다.

여러 층으로 발달한 동굴 통로 일부가 무너지면서 동굴 천장이 교량 형태로 남은 게 용암교다. 나무들의 뿌리가 돌 틈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세계유산축전 제공

용암동굴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동굴의 한 종류다.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흘러내릴 때 공기와 맞닿은 윗부분은 서서히 굳어가고 그 아래 여전히 빠르게 흐르던 용암이 빠져나가 생긴 공간이 동굴이 된 것이다. 지표면으로부터의 침식작용이나 풍화작용을 받지 않은 지각·지층의 원래 모습과 지하수 생물의 형태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어 학술적 연구 가치가 높다.

 

4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2025 제주 세계유산축전에 참가하면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신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제주는 360여개 다양한 기생화산과 용암동굴, 희귀생물 서식지를 보유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07년 한국 최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3개 자연유산인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응회구,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로 이루어졌다.

성산일출봉과 한라산 야간산행 후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 감상도 세계유산축전의 인기 코스다. 성산은 당일 새벽 4시30분부터 제한 없이 현장신청이 가능하나 한라산은 사전 예약을 통해 탐방객을 모집하고 전일 오후 10시부터 60명씩 짝을 지어 등반한다. 세계유산축전 제공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경사를 따라 제주 북동쪽 해안선까지 도달하면서 생긴 용암동굴들이다. 벵뒤굴, 만장굴과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은 동굴 생성물 보호를 위해 공개 제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축전 기간에는 일반에 공개된다. 

 

올해 행사는 동굴 탐험을 비롯해 한라산에서의 특별산행, 야간산행, 일출 감상, 거문오름부터 월정리 해변까지 걷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참가 예약은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제주=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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