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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늘부모님 나라를 대망해온 민족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그 선택받은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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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6 11:08:05 수정 : 2025-09-16 11:08:04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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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미래의 희망을 노래해 왔다

 

한민족의 역사에는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이 깃들어 있다. 시대와 사상은 달랐지만, 그 중심에는 고난을 넘어 평화롭고 정의로운 새 세상을 기다리는 마음이 자리했다. 특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하늘의 대신자가 올 것이라는 대망사상(待望思想)은 민족적 성향으로 깊이 뿌리내렸다.

 

미륵신앙은 고난 속 희망의 등불

 

불교에서는 정토사상이 이러한 열망을 대변했다. 대승불교의 정토사상은 부처의 힘(本元力)을 빌려 괴로움이 없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신앙으로, 신라시대부터 크게 퍼졌다. 당대 사람들에게 정토는 단순한 종교적 이상이 아니라, 전쟁과 기근 속에서 ‘고통 없는 세계’를 꿈꾸는 정신적 안식처였다. 오늘날 우리가 힐링 여행이나 명상을 통해 삶의 무게를 내려놓듯, 당시 민중에게 정토사상은 마음의 평온과 위안을 제공하였다.

 

또한 미래의 구세주로서 미륵불(彌勒佛)은 한국 불교 신앙의 중심적 상징이었다. 한민족은 역사적 고난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언젠가 나타날 미륵불’을 기다리며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였다. 이는 오늘날 기후 위기와 전쟁, 불평등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나 해법을 기대하는 심리와 다르지 않다. 백제 금산사와 신라 흥륜사의 주불은 모두 미륵불이며, 승려들은 미륵불 앞에서 “미래에 대성(大聖)이 화랑으로 태어나 세상에 나타나 주기를” 발원하였다. 통일신라 경덕왕 시대 조신(調信)의 설화, 즉 죽은 아이를 묻은 땅에서 미륵석상이 나오는 꿈은 민족이 불행 속에서도 새 세상을 갈망했음을 보여준다.

 

고려시대에는 법상종을 중심으로 미륵보살회와 미타불회가 열리며 민중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미륵불 신앙은 조선 숙종 시기 “석가불이 다하고 미륵불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는 여환(呂還)의 거사로까지 이어졌다. 실패로 끝났지만, 미륵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더 강하게 민중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처럼 미륵 사상은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불안의 시대에 위안을 준 신앙이었다.

 

성인·예언서를 통해 도덕·미래를 염원하다

 

유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상세계를 그렸다. 중국 고대 문헌 ‘산해경(山海經)’은 한민족을 관대함과 박애, 예의, 청렴, 자존 등 군자의 덕을 갖춘 민족이라 묘사했다. 이러한 덕성은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의(仁義)와 맞닿아 한민족의 근본 성격을 형성하였다. 유교에서 성인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도덕적 완성에 이른 인물이다. 요·순 같은 전설적 임금과 공자, 주공 등이 그 대표다. 한민족은 이들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하늘의 뜻을 인간 세상에 구현한 존재로 이해하였다. 공자는 사회적 조화와 평화를 위해 도덕적 기초를 다진 모델이었다.

 

군자의 천품을 지닌 한민족은 유교적 성인의 이상을 따라 도덕적 생활과 사회적 기틀을 마련하고, 그 터 위에서 하늘부모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한민족의 도덕적 자각과 사회적 책임, 평화와 조화를 향한 열망의 뿌리로 작용한다.

 

혼란한 시기에는 예언서가 희망이 됐다. ‘정감록(鄭鑑錄)’은 조선 후기 병란과 흉년, 위정자의 부패로부터 고초를 겪는 민중에게 “부패한 세상은 무너지고 성군(聖君)이 나타나 새 시대가 열린다”는 약속을 전했다. 조선 중기 격암 남사고가 남긴 ‘격암유록(格庵遺錄)’ 역시 미래에 대한 상세한 예언과 함께 성군의 예견하였다. 두 예언서 모두 하늘부모님의 뜻이 실현될 날을 기다리는 한민족의 마음을 보여준다.

 

한민족의 이상세계 실현과 사회 개혁

 

근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열망이 현실 변혁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중반, 한반도는 외세의 침략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민중의 삶이 극히 어려웠다. 이러한 시기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하늘을 섬기라”(侍天主·시천주)는 교리로 출발했다. 시천주에는 ‘인간과 만물 속에 하늘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모든 인간의 존귀함을 강조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후천개벽)를 열자는 사상은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고,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했다.

 

뒤를 이어 제자 최시형(1827~1898)이 교리를 체계화하고 조직을 확립하여 동학을 민중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20세기 초 손병희(1861~1922)는 동학을 천도교로 발전시켜 현대적·사회적 실천으로 확장하였다. 그는 인내천(人乃天)의 종지를 세우고, 포덕천하·광제창생·후천선경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천도교는 1905년~1920년대 초반 교세의 황금기를 이뤘으며, 조직적·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항일독립운동과 농민운동, 여성운동, 어린이 교육 등 다양한 신문화운동을 펼쳤다. 또한 심고(心告), 시일기도(時日祈禱), 청수의례(淸水儀禮) 등 생활 속 의례를 통해 사회 정의와 평화 실현을 강조하며, 한민족의 하늘부모님의 뜻과 이상세계 실현을 신앙적으로 이어갔다.

 

불교의 정토와 미륵, 유교의 성인 이상, ‘정감록’과 ‘격암유록’의 예언, 동학과 천도교의 개벽사상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은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꿔왔다. 이는 한민족을 단순한 생존 민족이 아닌, 종교적 기대와 신앙을 매개로 미래를 준비하고 기다린 민족으로 이해할 근거가 된다. 이러한 열망은 지금도 ‘언젠가는 하늘이 예비한 인물이 한민족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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