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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도 넘는 급식실서 굽고 튀기고… 수백명 밥 푸다가 골병든다 [심층기획]

입력 : 2025-11-05 06:00:00 수정 : 2025-11-04 23:26:47
김유나·차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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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사각’ 학교 급식노동자

정해진 시간 한꺼번에 조리 고강도 노동
환기시설 제대로 안돼 체감온도 45도까지
화상·부상 등 산재율 3.7%… 평균의 5배

조리흄 1급 발암물질… 폐 손상 일으켜
10년 이상 종사자들 70여명 폐암 확진
이직 잦아… 인력난에 병드는 악순환 계속

환기시설 개선율 평균 41%… 서울 12%
죽음 막기 위해 급식법 개정안 조속 통과
건강·안전보장 적극적 대책 강구해야

“튀김 조리할 때 연기가 많이 나거든요. 그걸 마시고 있으면 ‘이 연기가 또 내 폐를 죽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서울의 한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50대 A씨는 2023년 교육청에서 진행한 폐 컴퓨터단층촬영(CT) 검진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튀김 등의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리흄(유해연기)이 원인이었다. 평소 잔기침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했던 A씨에게 암 진단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수술 치료가 가능했고, 어렵게 산업재해 승인도 받았다.

1년을 쉰 뒤 돌아온 학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학교는 A씨의 폐암 산재 사실을 알면서도 환기 개선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A씨에게 병을 안겨준 그 급식실에서 여전히 연기를 마시며 일하고 있었다. A씨는 “아이들과 직원들에게 밥을 해주다 아팠던 건데 아무 변화도 없는 것을 보며 ‘학교에서 난 아무 상관 없는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며 “환풍기 하나 교체되지 않은 곳에 돌아가려니 겁났지만 다른 일을 찾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왔다”고 토로했다.

학교는 A씨 복귀 후 약 1년이 지나 뒤늦게 급식실 환경 공사를 했지만, 건물이 노후돼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A씨는 “지금도 환기가 완벽하게 되지는 않아 연기를 마실 때면 또 내 폐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발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A씨는 그래도 자신은 운이 좋다고 말한다. 초기에 암을 발견하고 산재 인정도 돼서다. 근무 10년이 안 된 사람은 폐암 진단을 받아도 산재 승인을 받기 어렵다. A씨는 “산재가 안 되면 치료비도 못 받아 걱정이 많았는데 겨우 승인받았다”며 “암이 꼭 10년 근무한 사람한테만 오는 것은 아닌데 지금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B씨는 운이 좋지 못했다. 충북의 한 고교에서 20년 넘게 급식 조리 노동자로 일했던 B씨는 몇달 전 폐CT 검진에서 폐암 4기 판정을 받았고, 올해 9월 끝내 숨을 거뒀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B씨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차린 전국교육공무직본부(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는 “고인의 빈자리를 메운 사람도 지금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며 “병들지 않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내주고 싶다. 지금 구조에선 누구도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미흡한 환기시설 속에서 노동자들은 폐 질환 공포에 시달리고, 적은 인력으로 일하다 다치는 것도 다반사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 아이들의 밥을 짓고 있지만 현장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노동계는 “급식실 산재는 정책 부재가 낳은 구조적 죽음이자 중대재해”라며 ‘산재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결되지 않는 조리흄…잇따르는 폐암

4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2021년 학교 급식실 노동자가 최초로 폐암 산재를 인정받은 후 올해 8월까지 213명이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했고 178명이 승인받았다. 폐암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B씨를 포함해 15명이다.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로, 폐 손상 위험을 높인다.

2021∼2023년 전국 교육청이 경력 10년 이상이거나 55세 이상인 급식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폐암 전수 조사를 한 결과 4만2077명 중 1만3653명(32.4%)이 ‘이상 소견’을, 338명(0.8%)이 ‘폐암 의심’ 소견을 받았다. 70여명(0.17%)은 폐암이 확진됐다. 35∼64세 여성의 폐암 발병률이 0.0288%(2019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2023년 교육 당국은 전국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을 2027년까지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열악하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이 전국 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환기시설 개선율은 평균 41%로, 서울 12%, 경북 24%, 인천·경기 33%에 그쳤다. 정책 발표 후 2년여가 지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딘 개선율이다. 이동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은 “교육 당국이 예산을 배정했지만 집행률이 낮다. 환기시설을 개선하려면 건물 리모델링도 해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기가 안 되는 고온다습한 급식실에서 노동자들은 종일 갇힌 공기와 싸운다. 20년 넘게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 중인 우시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아침에 출근해 가스불을 켜면 일산화탄소가 올라와 눈물, 콧물이 난다. 눈도 못 뜨고 울어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밥 주다 쓰러지는 노동자들

급식실의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다.

우 부본부장은 무더운 여름에 전을 부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동료를 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여름에 펄펄 끓는 기름 앞에서 닭을 튀기고 고기를 볶다 보면 진이 빠진다”며 “옷이 땀에 젖어서 손으로 짜면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장화 안에 땀이 고여 걸을 때 ‘철벅철벅’ 소리가 난다. 화장실에 가면 옷이 몸에 붙어 내려가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올여름 학교 급식실 온도를 측정한 결과 대부분 33도가 넘었고, 긴 팔에 모자, 장화 등을 갖춘 노동자들의 체감온도는 45.1도까지 치솟았다.

급식실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밥을 내야 하는 급식실 업무가 ‘고강도 압축노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설거지 등 후처리 업무도 많고, 좁은 공간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도 비일비재하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이 교육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한 화상·근골격계 질환 등 산재는 2166건으로 2023년(1843건)보다 17.5% 늘었다. 지난해 학교 급식실 산재율(3.7%)은 전체 산업 평균(0.67%)의 5배 수준이다.

우 부본부장은 “우리끼리는 ‘학교로 출근했다 병원으로 퇴근한다’고 한다.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아파도 참고 병원에 갔다가 다시 출근한다”며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위안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골병들어간다”고 토로했다.

부족한 인력은 병을 키운다. 현재 학교 급식실 조리사 한명당 식수 인원은 130∼180명으로, 66명 수준인 공공기관의 2배가 넘는다. 일이 힘들어 떠나는 이들이 많지만 신규 채용은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늘 인력난에 시달리고, 업무 강도가 높아져 노동자가 병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구조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필요”

노동계에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현행법에는 학교 급식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보장에 관한 사항이 규정돼 있지 않아 인력 기준 등이 법제화되지 않았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급식실 노동자 문제가 거론되면서 교육부와 노동부는 각자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B씨의 분향소를 찾아 사안 해결을 약속하고, 학교 급식 노동자 적정 인력운영 방안 관련 정책 연구를 추진한 뒤 2027년 상반기까지 대책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도 3일 학교 급식실 현장점검을 한 뒤 내년 사업장 안전보건 감독계획에 학교 급식실에 대한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반영해 지도·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올해 7월 발의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개정안은 학교 급식 종사자의 정의를 신설하고, 이들의 건강과 안전 보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부 장관은 3년마다 학교급식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가·지자체는 학교급식종사자의 건강과 안전 보장을 위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인용 전국교육공무직본부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때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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