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금지 안 된다’는 택배 기사들 “현실 무시한 억지 주장”…쿠팡노조 “민노총의 보복”
한동훈 “건강권 보호 방안은 마련돼야 하나 민노총이 무슨 권한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침해하나”
장혜영 “직업 선택의 자유에 죽음을 각오한 일터를 선택하는 것까지 포함되면 안 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0시부터 5시까지 심야시간대(새벽)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다. 새벽 배송 금지는 과로사 방지 등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과 새벽 배송 일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직업선택권 및 새벽 배송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편익을 침해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쿠팡의 배송 기사 노조가 새벽 배송 금지를 반대하면서 “쿠팡노조의 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며 민주노총의 새벽배송 제한안을 비판하고,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도 “새벽 배송 전면금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과제”라고 하는 등 노노 갈등까지 빚는 양상이다.
◆택배노조 “노동자의 최소한 수면권·건강권 보장해야”
8일 노동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는 택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과로사 등 산업재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달 22일 열린 이 기구에서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최소한의 노동자 수면 시간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0시~오전 5시 배송 제한’과 함께 오전 5시와 오후 3시에 각각 출근하는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새벽 배송 전면 금지’로 읽히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10여년 전 도입된 새벽 배송은 고객이 식품 등 물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바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로 국민 일상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논란이 일고 비판 여론도 적지 않자 택배노조는 지난달 30일 “가장 위험한 시간대의 배송업무를 제한해 택배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라며 “밤 12시(자정)까지의 새벽배송과 새벽 5시 이후 배송은 계속된다. 특히 아침 일찍 받아야 하는 긴급 품목에 대해서는 사전 설정 등을 통해 기존처럼 받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장시간노동과 야간노동이 뇌·심혈관계질환 발생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랐고,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보건기구(WHO)는 야간노동자에 대한 건강 보호 조치를 권고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해 실시한 ‘새벽노동으로 인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예방 대책 연구’ 보고서에서도 야간노동으로 인한 문제점이 담겨있다. 2019∼2023년 5년 동안 택배기사의 산재현황을 보면 2019년 10.1%였던 야간재해자는 2023년 19.6%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새벽배송기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자신의 건강상태를 ‘좋다’고 답한 비율은 30.3%로 우리나라 일반 성인(47.6%)보다 크게 낮았다.
택배노조는 “야간노동은 생체리듬을 파괴해 수면장애, 심혈관질환, 암, 우울증, 자살충동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며 “야간노동과 관련한 국내·외 기준은 ‘연속 2~3일을 넘지 않는 것’인데 쿠팡은 5~6일씩 계속된다”며 특히 국내 최대 새벽 배송 업체인 쿠팡을 겨냥했다.
◆쿠팡 노조 등 “현실 무시한 억지 주장…민노총의 보복”
하지만 정작 쿠팡 노조를 비롯해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도 반대론이 상당하다. 쿠팡 위탁 택배기사 약 1만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지난 3일 24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93%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새벽 배송의 장점으로 △교통 원활과 엘리베이터 사용 편리 등 배송 편의성 △높은 수입 △개인 시간 활용 등을 새벽 배송의 장점으로 꼽았다.
CPA는 성명에서 “노동자의 해고는 살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새벽 배송 택배기사들을 사실상 해고하려고 한다”며 “새벽 배송 금지는 야간 기사 생계 박탈 선언이자 택배산업 자해행위다. 새벽 배송의 실태조차 모르는 일부의 억지 주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PA는 또 “(민노총 택배노조 주장처럼) 오전 5시 배송을 시작하면 출근 시간에 차는 막히고 엘리베이터는 등교하는 아이, 출근 주민으로 가득 차 배송을 할 수 없는 기본적 현실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배송기사로 구성된 쿠팡노조도 택배노조 주장에 대해 “새벽배송은 이제 국민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로 자리잡았고 쿠팡 물류에는 생명과도 같은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야간근로를 줄이자는 주장만으로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것은 택배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지난 5일 기자 간담회에서 새벽 배송 관련 질문이 나오자 “새벽배송 전면금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또 새벽배송이 꼭 필요한 소비자층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그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가볍지 않다고 본다”며 “현행처럼 무리한 시간대에 일하는 것은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동자 건강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새벽배송에 대한 사회적 필요 등 중간 지대에서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전면 금지 실효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자들 중에는 새벽배송이나 야간물류에만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간 일자리가 아닌 다른 야간 일자리로 이동할 것”이라며 “야간노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전면금지를 한 국가는 어느 곳도 없다”고 했다. CPA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5%가 “심야배송을 지속하겠다”고 답했고, 이 중 70%는 “야간배송을 규제하면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고 했다.
쿠팡노조는 급기야 민주노총의 새벽배송 금지 추진 배경을 “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의심했다. 쿠팡노조는 7일 성명에서 “조합원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장을 노동조합이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대다수 야간 배송 기사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만이 이를 고수하는 것은 그들의 조합 내 야간 배송기사 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에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보일 정도”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앞서 쿠팡노조는 2023년 정치적 활동이 아닌 조합원을 위한 실질 활동에 집중하겠다며 조합원 93%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한동훈 VS 장혜영, ‘새벽 배송 제한’ 두고 논쟁
민주노총이 제기한 ‘새벽 배송 제한’ 이슈가 정치권에서도 쟁점이 된 가운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이 지난 3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 공개 토론을 벌였다.
장 전 의원은 민주노총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두둔했다. 그는 “새벽 배송이라는 게 오늘 밤에 배송을 시켜서 내일 아침 7시 전에 받아보는 것인데, 새벽 배송이 금지된다고 하면 이제 그 서비스를 못 받는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안은 그게 아니다”고 했다. 장 전 의원은 “새벽 배송은 지금처럼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최대한 유지하되, 대신에 이것이 0시에서 5시 사이 택배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아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굉장히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며 “서비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로를 없애려고 하는 안”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거기에 왜곡이 있다. 0시에서 5시 사이 배송 기사들이 택배를 하지 않으면 새벽에 받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5시에 출근해서 7시까지 배달이 되나. 그건 불가능”이라며 “새벽 배송은 새벽에 출발하는 게 아니라 새벽에 받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사람의 인체 리듬상 야간에 (일하면) 건강을 더 해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걸 다 알면서 선택을 한 것 아닌가. 현재 대한민국을 움직일 때 야간에 그런 노동을 하는 분들 굉장히 많다”고 했다. 이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갈 경우 건강권을 보호하는 방안을 만드는 것은 제가 100% 동의하는데, 이 직역 자체를 없애버리면 소비자들도 그렇고 당사자들은 다 하고 싶어 하는데 왜 민주노총이 ‘이건 너희 건강에 문제가 있으니까 없애야 돼’라고 할 수 있는지, 이게 필수가 아니라는 얘기를 민주노총이 무슨 권한으로 할 수 있나”라고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를 문제삼았다.
이에 장 전 의원은 “일단 새벽 배송을 없애는 안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며 “직업 선택의 자유는 당연히 있는데 그것이 죽음을 각오한 일터를 선택하는 것까지 포함하느냐,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받아쳤다.
◆노동부도 ‘어쩌나’ 난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이다.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미 ‘워킹맘’ 등 국민들 사이에서 새벽 배송이 널리 자리잡았고, 늦게까지 일하는 자영업자들은 다음날 영업을 위해 새벽배송을 이용하고 있다”며 “전면 금지의 역효과가 너무 크다.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에도 심야배송과 관련한 과로사 문제가 제기됐지만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금지가 아닌 ‘제한 권고’에 그쳤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아직 부처 내에서 논의해보지 않았지만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신중하게 검토해야 된다고 본다”며 “소비자 입장도 고려해야 되고 여러 가지 조건을 같이 봐야 한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다만 “야간노동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고, 야간노동 사이 13시간,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강제로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운송업, 보건업, 기타운송관련서비스업 등에서 근무일과 근무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하듯 새벽 배송 업무를 추가해 새벽 배송 기사들에게도 ‘11시간 연속 휴식’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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