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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참석 못한 진주만 추모식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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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09 14:34:28 수정 : 2025-12-09 15:50:45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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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조선이 제국주의 일본에 국권을 완전히 빼앗긴 1910년 8월 29일을 ‘국치일’(國恥日)이라고 부르며 해마다 8월 29일이 되면 부국강병(富國強兵)의 의지를 다진다.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외국에 주권을 잃은 적이 없는 미국에도 국치일이 있을까.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급습했다.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미국은 호되게 당하고 말았다. 이튿날인 12월 8일 미 연방의회를 찾은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원들 앞에서 “어제 1941년 12월 7일은 영원히 치욕으로 남을 날이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은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공식화한 이 발언은 오늘날 ‘치욕의 날(Day of Infamy) 연설’로 불린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 공습에 나선 가운데 항구에 정박해 있던 미 태평양 함대 소속 전함이 일본군의 폭탄에 맞아 불타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을 위해 항공모함 6척을 동원했다.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55분 시작된 공격에는 각 항모에서 출격한 총 400대 이상의 함재기가 동참했다. 이들은 공중에서 폭탄과 어뢰를 거침없이 투하했다. 또 미군 장병들에게 닥치는 대로 총격을 가했다. 미 태평양 함대 소속 함정 여러 척이 침몰하고 군인 및 민간인 240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진주만 공습 이전에 ‘일본 침략 임박’을 암시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하지만 하와이의 미군 지휘부는 별다른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정찰도 게을리했다. 루스벨트가 “치욕”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미 해군을 질타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진주만’(2001)과 ‘미드웨이’(2019) 등 여러 할리우드 영화에 잘 묘사된 것처럼 공습 이후 미국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날의 치욕을 갚아주겠다’는 각오 아래 정부와 군대, 그리고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쳤다. 이듬해인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모 4척을 격침한 것을 시작으로 대반격에 나선 미군은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지난 7일 진주만 공습 희생자 84주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진주만을 추모하는 2025년 국가 기념일에 즈음해’라는 제목의 포고문을 발표했다. 해당 글에서 트럼프는 “일본의 의도는 미국의 정신을 말살하는 것이었지만, 그 치명적 공격은 되레 미국인들의 시민 의식을 결집시키고 결의를 북돋웠다”고 지적했다. 지극히 타당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3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진주만 공습 72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생존자들 모습. 그 사이 생존자 수가 급격히 줄어 최근 84주년 추모식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다. 진주만 공습을 겪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는 현재 12명뿐인데, 모두 100세를 넘긴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AP연합뉴스

다만 올해 하와이에서 열린 진주만 추모식은 공습을 겪고도 살아남은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AP 통신에 따르면 진주만 생존자는 현재 12명뿐인데 모두 100세를 넘긴 고령이라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오리건주(州)에 사는 어느 생존자의 딸은 AP와의 인터뷰에서 “105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하와이에 가려 했으나 건강 문제 탓에 예매한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며 “1941년 이후 처음 추모식장에 생존자가 단 한 분도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척 아프다”고 말했다. 우리 6·25 전쟁 참전용사들 가운데 생존해 계신 어르신들도 점점 줄어드는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보훈 당국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분들을 예우하고 기억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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