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알록달록한 떡국을 먹었다. 사골국물에 가래떡과 색색의 꽃떡을 적절히 섞어 끓인 것이었다. 보라색과 하늘색, 노란색 꽃떡의 통통한 꽃잎을 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다채로운 한 해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릇을 비웠다. 내게 있어 떡국은 편안하고 다정한 음식에 가깝다.
그런 식으로 기억되는 음식이 몇 가지 더 있다. 우리 집은 온 가족이 모일 때 만둣국과 녹두전, 갈비찜을 빼놓지 않고 하는 쪽이었다. 엄마는 새해가 되기 전 숙주와 고기, 당면과 김치를 넣은 만두소를 만들었는데 그 양이 김치 버무릴 때 쓰는 양푼 가득일 만큼 상당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직접 만든 만두피는 투박한 생김새와 달리 식감이 쫀득했다. 엄마와 아빠, 나는 넓은 보자기를 펴놓고 모여 앉아 온 종일 만두를 빚었다. 똑같은 밀대로 밀었지만 아빠가 만든 만두피는 활짝 편 손바닥만큼 커다랬고 엄마가 만든 만두피는 크기가 적당한 대신 두꺼웠다. 내 만두피는 밀 때마다 타원형으로 길어져 어떻게든 동그랗게 만들려고 애쓰다 보면 두께가 들쑥날쑥해지곤 했다.
만두를 빚는 건 엄마와 내 몫이었다. 엄마는 똑같은 생김새의 만두를 순식간에 빚어 쟁반 가득 늘어놓곤 했다. 욕심껏 만두소를 밀어 넣은 내 만두는 커다란 찜통에 넣어 찌는 동안 죄다 터졌다. 그렇게 준비한 만두를 뜨겁게 끓여 온 가족이 나눠 먹었다. 언니들이 형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설 때마다 엄마는 부산해졌다. 두세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큼직한 만두에 고명을 잔뜩 얹어 상에 냈다. 내게 있어 만두는 번거롭고 복잡하지만 그만큼 다정한 마음이 담긴 음식이었다.
양푼 가득이던 만두소는 엄마 아빠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전통시장에서 만두피를 사다 썼다. 완벽하게 둥근 만두피는 미끌거리고 잘 붙지 않는 대신 크기가 똑같은 만두를 얼마든지 빚어낼 수 있었다. 다음 해에는 만두소가 반절로, 또 다음해에는 만두피가 반절로 줄어들었다. 엄마 아빠가 일흔을 넘어선 지점부터는 더 이상 만두를 빚지 않게 됐다. 김장김치를 잔뜩 다져 넣어 칼칼하고 맛이 깊던, 들쭉날쭉한 크기의 우리 집 만두는 이제 기억 속에만 있다. 재작년부터는 아예 김장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정한 음식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 집 만두는 사라졌지만 언니들과 형부가 제각각 음식을 해 와 큰 상에 부려 두었다. 음식에 재능이 없는 나는 딸기가 듬뿍 들어간 케이크를 사다 상에 올렸다. 뜨겁고 부드럽고 매콤하며 달콤한 음식들을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앉아 먹었다. 이리 와 앉아, 손짓하고 아직 뜨거울 때 먹어, 하며 서로에게 권한다. 조금 더 간편한 과정 속에 있거나 무게감이 덜할 수는 있지만 말과 온기를 건네는 다정만큼은 변함없는 음식들. 나는 보라색 꽃떡을 떠 입에 넣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떠오른 기억을 나눈다. 그렇게 또 새해를 맞이한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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