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한국 사회의 종교와 국가를 둘러싼 공론장은 분명 이전과 다른 지점에 서 있다. 1월 21일자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1월 28일 문화일보에 이르기까지, 주요 일간지들은 종교 관련 수사의 범위와 국가 개입의 한계를 차분히 되묻는 기사를 잇따라 내놓았다. 그 초점은 특정 종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종교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국가 권력이 과연 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한겨레 정치부장의 칼럼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는 이 논쟁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칼럼은 정교분리 조항이 종교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규범이 아니라, 국가가 종교의 자유 영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설정된 헌법적 안전장치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환기한다. 미군정을 거쳐 한국 헌법에 이식된 정교분리 원칙의 뿌리는 국교를 부정하고 시민의 종교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 종교를 침묵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문화일보 보도 역시 이 지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완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불교정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규모 강제 연행과 폭력, 그리고 훗날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로 이어진 역사는 종교 자체를 대상으로 한 국가 개입이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해외 사례로 제시된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응 역시 시사적이다. 미국 정부는 테러를 저지른 조직과 개인을 엄정하게 처벌했지만, 이슬람교 자체를 수사나 제재의 대상으로 삼는 데에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범죄 행위와 종교의 존재를 구분하는 원칙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라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종교계 내부에서도 공명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계의 목소리가 진보와 보수, 종교 안팎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계 매체 뉴스앤조이는 1월 26일자 보도에서 신천지·통일교 수사가 가속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 논리가 자칫 기독교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특정 종단을 ‘이단’이나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국가 권력의 입을 통해 반복될 때, 그 칼날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다. 이는 신학적 옹호가 아니다. 종교 자유의 제도적 안전망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우려에 가깝다. 지난해 12월 29일자 크리스천투데이가 소개한 ‘2025 올해의 성경구절’ 선정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는 마태복음 22장 21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를 올해의 말씀으로 꼽으며, 정교분리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정교분리는 국가가 종교를 간섭하지 말라는 원칙이지, 종교가 사회와 정치에 대해 윤리적·예언적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침묵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사회도 건강해지고, 종교도 본래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과거 정교분리 논쟁이 종종 진영 논리나 종교 혐오의 개념으로 소비됐다면, 최근의 흐름은 헌법 원칙과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국가 권력의 한계를 다시 설정하려는 공론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는 갈등의 심화라기보다 민주사회가 스스로의 기준을 점검하는 성숙의 과정에 가깝다. 물론 위법 행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종교단체든 개인이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처벌은 형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기존의 실정법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종교의 교리나 정통성, ‘이단성’을 국가가 판단하는 순간, 정교분리는 원칙이 아니라 통치의 도구로 전락한다. 한겨레 칼럼의 표현처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종교 자유를 지키는 방식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등장한 일련의 기사와 논의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는 특정 종교를 둘러싼 소모적 공방을 넘어 종교와 국가의 건강한 거리 설정을 다시 묻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국가가 종교를 관리 대상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정상이다. 이러한 균형을 향한 공론이 언론과 종교계, 학계를 가로질러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다. 한국 종교사는 국가 권력과의 긴장 속에서 수차례 상처를 겪어 왔다. 그 역사적 기억 위에서 지금의 논쟁이 정교분리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한국 종교사의 미래를 가늠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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