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와 묶여서 합의 처리 난망
안보·기술 경쟁 심화 속 국익 지켜야
여야 간 이견이 없는 형법의 간첩죄 개정이 이번에도 무산돼 빈축을 사고 있다.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 91개가 무더기로 처리됐는데 간첩죄 개정 조항이 포함된 형법 개정안은 상정도 못 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대하는 ‘법왜곡죄’(법리를 왜곡해 판결·기소한 판사·검사를 처벌하는 신설 조항)가 간첩죄 개정과 하나의 형법 개정안 대안으로 묶여 있어서다.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안보·기술 전쟁이 날로 격화하는데 간첩죄 개정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상 간첩죄(형법 98조)는 ‘적국’, 즉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 대상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 해군 기지 등을 촬영해온 중국인들은 간첩죄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일반이적죄나 군사기지·시설 보호법 위반 혐의 등이 적용됐다. 중국 등 외국은 적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존재 자체가 기밀인 우리 군의 정보 요원들 신상을 빼돌려 중국 측에 넘긴 혐의(군형법상 일반이적죄)로 기소된 전직 정보사령부 군무원조차 간첩죄 적용을 피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간첩법’ 개정안은 간첩 행위의 대상을 북한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까지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간첩죄를 ‘적국’에만 한정한 나라는 우리뿐이다. 지난해 22대 국회 출범 후 여야는 형법 98조의 적국을 ‘외국’으로 고쳐 입법 공백을 메우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간첩법 개정안에 동의했다고 한다.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법왜곡죄 변수로 본회의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혀 다른 성질의 법안을 하나의 대안으로 묶은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만약 법왜곡죄와 간첩법 개정안이 각각의 형법 개정안으로 법사위를 통과했다면 비쟁점법안인 간첩법 개정안은 이미 처리됐을 것이다. 법왜곡죄와 간첩법 개정안이 연동되면서 법 왜곡죄가 통과되지 않으면 간첩법 개정안은 처리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야당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법왜곡죄 도입은 사법 독립 침해”라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여권은 여론과 정치적 득실을 저울질하면서 법왜곡죄 처리 시점을 늦추고 있다. 간첩법 개정안이 법왜곡죄의 인질이 된 셈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북·중·러의 밀착으로 한반도의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도 거래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간첩법 개정은 우리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반도체 같은 핵심산업 보호 차원에서도 시급한 일이다. 간첩법 개정안을 법왜곡죄 신설을 위한 미끼로 활용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국회는 신속히 두 법안을 분리하고, 간첩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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