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 주식매도 등 영향 원화 약세
환율 1466.1원, 11개월래 최대 상승
3년 국고채 금리 年 3.180% ‘급등’
에너지 순수입국 韓 경제 큰 위협
전쟁 장기화 땐 환율 1540원 갈수도
정부, 20조원 규모 금융지원 추진
미국·이란 전쟁에 원유 순수입국인 한국의 타격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3일 코스피 지수가 5700선으로 내려앉고 원·달러 환율은 26.4원 급등했다.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내 순금 한 돈 가격은 110만원대로 올라섰다. 정부는 이번 사태로 어려워진 기업에 20조3000억원 규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주 6300선을 넘으며 고공 행진하던 코스피는 이날 외국인들의 ‘팔자’ 행렬에 5800선을 내주며 5791.91로 마감했다. 이날 낙폭은 역대 최대치(452.22포인트)였다. 주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대부분 뒷걸음질 쳤다. 전쟁 영향에 따른 업종별 희비가 엇갈렸다. 전쟁 수혜주로 부각된 방산주와 정유주, 해운주 등은 급등했고, 유류비와 원재료비 상승 부담에 직면한 항공, 화학, 철강 관련 종목들은 약세를 나타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종목들도 덩달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신승진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전날 미국 증시는 전쟁의 타격을 크게 입지 않은 모습이었고, 일부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며 “전쟁보다는 코스피가 그동안 많이 올랐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차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낙폭을 키웠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6.4원 오른 1466.1원(오후 3시30분 기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 상승폭은 미 관세 충격이 있던 지난해 4월7일(33.7원) 이후 약 1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6일(1469.5원) 이후 약 한 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원화 약세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따른 달러화 강세에 이날 하루 5조원이 넘는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더해진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는 1.0% 오른 반면 유로화(-1.0%), 엔화(-0.9%), 파운드화(-0.6%) 등은 모두 약세였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값은 급등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금시장의 1g당 금 가격은 24만9200원(오후 3시30분 종가)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보다 9900원(4.14%) 뛰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순금 한 돈(3.75g) 매입가는 110만5000원으로 전날보다 5000원 올랐다.
국고채 금리는 급등(채권가격 하락)했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3.9베이스포인트(1bp=0.01%포인트) 오른 연 3.180%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금리는 14.8베이스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경제가 유가 상승에 민감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이날 시장 타격이 컸다. 한국은행 미국 뉴욕사무소는 “시장은 교전 자체보다는 호르무즈해협 통행 제한 등 에너지 공급망 교란 위험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해당 지역 원유 수송의 최종 종착지인 에너지 순수입국이 취약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2일(현지시간) 전쟁과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 국가의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특히 한국과 일본을 취약국으로 꼽았다. 모건스탠리는 통상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상 지속해서 오를 때마다 에너지 순수입국의 성장률이 0.2∼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변수는 이란 사태의 지속 기간과 유가”라며 “사태가 3, 4일 단기간에 끝날 경우 유가는 80달러 이하, 환율은 1470∼1480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반면 중동 사태가 3∼4주 지속된다면 국제 유가는 100달러, 환율은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며 “사태가 더 장기화돼 유가가 130달러까지 치솟는다면 환율은 1540원까지 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시장 불안을 달래며 피해 기업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 주재로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주재하고 에너지 수급 상황과 중동지역 해상물류, 피해 중소기업 지원방안에 대해 점검했다. 정부는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중동지역에 위치한 우리 선박에 안전 관련 특이동향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상황이 장기화되더라도 충분한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다만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에 대비해 중동 외 물량 확보도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기업 피해·애로 사항을 면밀히 파악, 필요한 지원도 제공하기로 했다. 특히 수출입은행 ‘위기 대응 특별 프로그램’을 가동해 피해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최고 2.2%포인트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등 수은(7조원)·산업은행(8조원)·중소기업은행(2조3000억원)·신용보증기금(3조원)이 운영하는 총 20조3000억원 규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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