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현행 조사 체계론 한계
1년에 2번 물 썼다가 빈집서 제외
부정확한 통계가 정책 실효성 ‘발목’
佛 ‘AI 실시간 탐지 시스템’ 참고를”
“안전 등급 위주 조사 방법도 문제
활용 가치 등 상세 정보 포함돼야
세컨드하우스·외국인 임대 대안
철거 권한 강화·세제 개편 필요” 끝>
빈집은 더 이상 일부 소멸위기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구감소와 주거구조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주택공급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수도권 도심에서도 빈집은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지자체가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세계일보가 빈집 전문가 다섯 명에게 ‘빈집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물어본 결과, 대부분이 실태파악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조정희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인구감소에 따른 빈집 증가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이미 빈집이 된 물건들 중에서 쓸 만한 집을 발굴해 활용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며 “그러자면 정확한 실태파악이 중요한데 현행 조사체계로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현행 실태조사는 전기나 수도 사용량 등을 기준으로 현장조사 대상을 선정하기 때문에 실제 빈집이 누락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예컨대 시골마을에서 청소를 위해 빈집 물을 끌어와 사용하는 등 소량이라도 수도를 썼다면 현장조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 대청동에서 빈집 소유주가 집 관리를 위해 1년에 2번 물을 썼다가 빈집 통계에서 제외된 사례도 예로 들었다.
◆AI 활용 빈집 실태 파악해야 대책 세워
조 부연구위원은 프랑스의 빈집 탐지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프랑스는 주택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빈집을 실시간으로 판별한다. 지자체 담당자는 해당 시스템에 접속해 빈집을 관리할 수 있다. 조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빈집 관련 사업이 많지만 부처들이 서로 어떤 사업을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 담당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인수인계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모든 정보가 모이는 통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도 실태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소장은 “지자체가 조사한 빈집 목록을 가지고 현장에 가보면 바로 옆에 빈집이 있는데도 자료에는 빠진 경우가 허다하다”며 “기본적인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적절한 정책이 나올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는 관련 법안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지만 통계의 부정확성으로 현실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빈집이 중요한 정책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정확한 근거 자료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지성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실태조사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전 연구위원은 “현재 실태조사는 빈집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피는 안전 등급 진단 위주로 진행된다”며 “빈집의 입지라든가 향후 개보수를 통해 활용할 가치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빈집을 매입해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상세한 정보가 포함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민간 중계 플랫폼과 연계해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컨드하우스 등 활용안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빈집 활용방안으로 세컨드하우스를 제시했다.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는 “현직에서 물러난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중소도시나 시골로 낙향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집값 부담에 실행하지 못하는 이가 다수”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지자체가 빈집을 매입해 개보수한 뒤 이들에게 저렴하게 매도하거나 분양하는 것이 방법”이라며 “소멸위기에 놓인 지자체 입장에서는 인구유입 효과가 있고 수도권은 주거 수요가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 교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칠리아 도시 외곽지역은 빈집으로 골머리를 앓았다”며 “국가에서 빈집을 매입해 2∼3년 내 이주하는 조건으로 1유로에 판매했고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농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참고할 만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전 연구위원 역시 세컨드하우스를 빈집 대안으로 꼽았다. 전 연구위원은 “서울에 살면서 주말마다 주말농장을 돌보러 강원지역에 오는 분들은 가격만 합리적이라면 빈집을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할 의향이 있을 것”이라며 “직장 때문에 수도권과 그 외 지역에 모두 집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빈집은 새로운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구감소지역에 한해 빈집 구입·유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을 완화해주고 잠재적 빈집인 악성 미분양 주택에도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지자체 권한 강화 및 세제 개편 필요
세컨드하우스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최 소장은 “비용 부담이 큰 세컨드하우스는 유의미한 정책 수단으로 쓰이긴 어렵다”며 “그보다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빈집을 활용한 공공임대주택 문호를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머물 곳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며 “경기도의 경우 빈집을 개보수한 공공임대주택이 비어 있음에도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입주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세컨드하우스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다. 마 교수는 “세컨드하우스는 관리가 어렵다”며 “다시 빈집으로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역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특히 청년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매수할 기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마을회관이나 어린이집 등 공공 용도로 활용하는 방법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폐가가 된 빈집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철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 교수는 “장기간 방치된 빈집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주변을 점차 우범지대로 만든다”며 “담장 붕괴 등 안전상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자체가 철거에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유주와 법정 분쟁 우려 때문”이라며 “철거가 필요할 경우 지자체에게 강한 권한을 주고 공무원이 소송에 휘말리면 국가가 보호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거를 유도할 세제 개편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 연구위원은 “재산세 주택분이 토지분에 비해 세율이 낮다 보니 쓰러져가는 폐가라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주택분에 대한 세율을 올리거나 빈집에 대해 환경 부담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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