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은 24세 투수의 기적
“다 끝났어요. 넘어지는 게 익숙하니까 별로 큰 타격은 없어요.”
지난해 9월 열린 2026 KBO 신인드래프트. 박준영(24·한화 이글스)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2020년과 2022년에 이어 세 번째 낙방이었다.
지명이 모두 끝난 뒤 눈물을 보인 건 오히려 부모님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안 끝났어. 뒷바라지 계속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어디 가서든 기죽지 마. 그리고 꿈만 잃지 마.”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박준영은 KBO리그 45년 역사상 처음으로 육성선수 출신 데뷔전 선발승의 주인공이 됐다.
박준영은 185㎝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다. 야구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글러브를 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어깨가 약했던 탓에 공을 던진 지 두 달 만에 사이드암으로 전향했다. 충암고 시절에도 특급 유망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프로 지명보다는 대학 진학이 현실적인 목표였다.
그러나 대학 진학마저 쉽지 않았다. 원하는 대학 6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차선책으로 택한 강릉영동대에서도 시련은 이어졌다.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 선발 등판 도중 팔꿈치 인대가 손상됐고, 결국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이후 청운대로 편입해 다시 공을 던질 날을 준비했다.
암흑기 속에서도 그는 프로의 꿈을 놓지 않았다. KIA에 입단한 친구가 건넨 티켓으로 광주 야구장을 찾았다. 프로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를 바라본 뒤 그는 무등산 중머리재에 올랐다.
정상에서 그가 되뇌었던 말은 짧았지만 간절했다. “제발, 제발.”
김성근 감독이 가장 먼저 적은 이름
수차례 낙방 끝에 처음 받은 합격 통보는 프로가 아닌 불꽃야구였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외면받았던 이름을 가장 먼저 적은 사람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청운대 4학년이던 그는 방송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아마추어 선수로는 처음으로 불꽃야구 선발 마운드에 섰다.
불꽃야구는 단순한 방송 출연이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과 이대호, 이택근 등 야구계 선배들과 함께한 시간은 박준영에게 또 다른 배움의 기회였다. 선배들은 경기 내용 하나하나를 짚어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회 만에 강판됐던 경기 뒤에는 “좋은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는 투수”, “초구를 가장 강하게 써야 한다”는 값진 조언도 얻었다.
김성근 감독은 공의 궤적부터 하체 사용법까지 세밀하게 지도했다. 속구와 슬라이더에 의존하던 박준영은 변화구를 연구하고 투구 메커니즘을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이후 “공부하고 성장하는 투수가 되는 계기였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불꽃야구에서의 활약이 곧바로 프로 입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KBO 45년 역사를 바꾼 이름
박준영은 다시 한 번 도전을 택했다. 신인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뒤 충남 서산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입단 테스트에 참가했고 그날 저녁 합격 통보를 받았다. 등 번호도 미래도 보장되지 않은 육성선수 신분이었다.
KBO 최저 연봉(3000만원)으로 2026시즌을 시작한 그는 퓨처스리그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3∼4월 7경기(28이닝)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29를 기록하며 퓨처스 루키상을 받았다.
그리고 5월 7일 인생을 바꾸는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경기 끝나고 대전으로 가면 된다”는 1군 콜업 통보였다. 박준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머리가 하얘졌어요.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5월 10일 대전 LG전. 선발 문동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경문 감독이 선택한 투수는 박준영이었다. 그는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그대로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육성선수 출신이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건 KBO리그 45년 역사상 처음이었다. 리그 상위권을 달리던 LG를 상대로 써낸 값진 기록이었다.
경기 후 김경문 감독은 “잘 던져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류현진도 다가와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나이스 피칭.” 박준영은 그 말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박준영은 부모님과 함께 데뷔전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그는 구단 공식 유튜브에서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는 없었을 것”이라며 “뒷바라지를 정말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세 번의 드래프트 낙방, 토미존 수술, 수많은 좌절 끝에 박준영은 결국 프로 선수가 됐다.
어머니의 “꿈만 잃지 마”라는 말은 결국 현실이 됐다. 이제 그가 바라는 건 하나다.
“1군에서 오래오래 야구하고 싶어요. 올해는 안 다치고 계속 야구하는 거, 그게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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