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빙수에 대한 소비자학적 관점, ‘과시 소비·경험 소비’
1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도 호텔 빙수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예년보다 이르게 찾아온 더위에 서울 시내 특급 호텔들은 앞다퉈 빙수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호텔 빙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망고 빙수’는 일부 특급 호텔에서 15만원에 가까운 가격에도 인기 메뉴로 꼽힌다. 대중적인 여름 간식이었던 빙수가 럭셔리 디저트로 진화하기까지의 변천사와, 고물가 속에서도 고가의 호텔 빙수가 인기를 이어가는 배경을 짚어봤다.
◆ 조선시대에는 화채가 여름철 별미…팥빙수, 일제 강점기 때 등장
얼음을 활용한 간식이 공식적인 기록에 처음 등장한 때는 조선시대였다. 당시는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빙고(氷庫)에 저장해 뒀다가 여름에 화채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얼음이 귀해 왕실이나 양반가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간식이었다. 왕이 하사해야 맛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존재였던 셈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제빙 기술이 들어오면서 빙수는 대중적인 여름철 간식이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1900년대 들어 곱게 간 얼음 위에 단팥을 얹어 먹는 ‘팥빙수’가 대표 빙수로 자리매김했다. 1915년 서울 시내에만 빙수장수가 442명이 넘을 정도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여름철 대표 별미로 자리 잡았다. 일본인 빙수장수는 충무로 일대, 조선인 빙수장수는 종로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30년대에 들어 소형 동력기가 보급되고 얼음에 감미료, 색소를 넣어 얼린 ‘아이스케키’가 등장하면서 팥빙수의 인기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빙수 장사는 진입장벽이 낮았기 때문에 한동안 도시 중심으로 장사 열풍이 지속됐다. 광복 후 대규모 제과회사에서 파는 빙과와 달리 팥빙수는 제과점, 과자점을 중심으로 여름철 기호식품이 됐다.
◆ 가정에서 먹던 팥빙수, 카페·호텔 거쳐 ‘럭셔리 디저트’로
팥빙수는 1990년대 들어 가정용 빙수기가 판매되면서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대중 디저트가 됐다. 단팥 통조림, 과일 칵테일 통조림, 떡, 젤리 등 각종 빙수 재료가 판매되면서 토핑은 더 다양해졌다.
90년대 말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커피 뿐 아니라 빙수를 여름철 메뉴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카페 간 경쟁이 붙으며 점차 종류가 다양해지고 고급화 됐다. 특히 팥빙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빙수가 등장한 것은 2010년 한 퓨전 떡 카페가 ‘인절미 설빙’ 을 처음 선보이면서다. 기존보다 훨씬 얼음을 곱게 갈고, 그 위에 콩가루와 인절미를 얹은 빙수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절미 설빙이 엄청난 인기를 얻자, 각종 곡물, 과일, 과자, 초콜릿, 치즈, 커피와 같은 새로운 식재료와 어울리는 새로운 메뉴들이 잇달아 출시됐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개성이 더해진 빙수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2013년에는 아예 빙수를 전문으로 파는 디저트 카페가 등장해 프랜차이즈화 되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호텔도 빙수를 여름 시즌을 대표하는 디저트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호텔의 서비스와 공간, 분위기를 함께 즐기는 ‘시즌 디저트’로 빙수를 포지셔닝하면서, 호텔 빙수는 여름철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게 됐다. 특히 망고빙수는 2024년 일부 호텔에서 처음 10만원을 돌파해 올해는 14만9000원까지 오른 상태다.
◆ 고물가·경기침체 속 10만 원 넘는 호텔 빙수, 왜 인기 있나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소비는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모든 지출이 동시에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일부 소비자들은 주택이나 자동차처럼 큰 비용이 드는 소비는 미루는 대신, 비교적 짧은 만족을 주는 소비에 지갑을 연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다. 립스틱 효과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 립스틱처럼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사치재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고가의 내구재 구매를 포기하는 대신, 단발성으로 즐길 수 있는 경험이나 기분 전환용 소비에 집중하는 경향으로 해석된다. 최근 고가 호텔 빙수의 인기도 이러한 소비 심리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소비자학적 관점에서 호텔 빙수는 단순한 식음료를 넘어 ‘과시 소비’와 ‘경험 소비’의 성격을 함께 지닌 상품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음식은 먹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대상이 됐다”며 “호텔 빙수 역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 즉 과시 소비의 측면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숙박이나 코스 요리처럼 수십만 원대의 소비에 비해 빙수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 고급 호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소비, 즉 경험 소비로 선택되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호텔 업계 역시 빙수를 단순한 디저트가 아닌 여름철 시즌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 특급 호텔 관계자는 “매년 여름 호텔 빙수는 시그니처 메뉴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며 “최근에는 술과 함께 즐기는 페어링 개념으로 빙수를 찾는 고객도 늘고 있고, 계절에 따라 딸기 빙수 등 다양한 변주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철 과일을 활용하고 호텔만의 차별화된 레시피를 선보이기 위해 매년 준비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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