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중앙 정부 부처의 장관은 보통 ‘세크레터리’(Secretary)로 불린다. 한국인 대다수에게 익숙한 영어 단어 ‘세크레터리’는 일반적으로 비서를 뜻한다. 그래서 영어를 접한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은 국제정치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 국무부 장관(Secretary of State)조차 ‘국가 비서’로 번역하기도 한다. 미 국방부의 경우 지금은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필자도 학창 시절 국방장관(Secretary of Defense)을 ‘방위 비서’라고 오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내각에는 재무부, 내무부, 재향군인부 등 15개 부처가 있다. 딱 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장관(세크레터리)이라는 명칭을 쓴다. 유일하게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만 수장의 직함이 다르다. 법무장관에겐 ‘세크레터리’ 대신 ‘어토니 제너럴’(Attorney General)이란 존칭을 붙인다. 이를 한국어로 옮기면 ‘검찰총장’에 가깝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분리되어 법무장관 및 검찰총장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검찰총장이 곧 법무장관을 겸하는 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법무장관은 다른 장관들과 달리 ‘가르드 드 소’(garde de sceau)로 불린다. 이는 직역하면 ‘도장을 보관하는 사람’이다. 절대 왕정 시절 프랑스 군주의 명령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해당 문서에 법무장관이 도장을 찍어야 했다. 왕권까지 견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법무장관을 각별히 예우하는 셈이다. 영국 법무장관도 다른 장관들과 다르게 ‘로드 챈슬러’(Lord Chancellor)라는 색다른 호칭이 부여된다. 내각의 일원이긴 하나 독립성이 무척 강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윤석열정부 시절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재 전 법무장관이 22일 1심에서 징역 25년형 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됐다. 조은석 특별검사가 그에게 구형한 20년보다 늘어난 중형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무장관으로서 헌법 수호의 의무를 부담하면서도 내란(계엄 선포)에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한국 법무장관에게 프랑스 ‘가르드 드 소’와 같은 역할을 주문한 셈이다. 장관이라고 다 같은 장관이 아니다. 지금의 법무장관부터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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