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결국 1997년 외환위기 수준에 도달했다. 과거와 같은 경제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1500원대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환율이 계속되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당국이 꺼내 든 각종 카드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당장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흐름이 잦아들 때까지는 고환율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종가 기준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84.6원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8년 1분기(1493.1원) 이후 최고치다.
분기로 기간을 좁히면 환율 오름폭이 더 뚜렷해진다. 올해 2분기 평균 환율은 1501.6원으로 1500원을 웃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분기(1596.8원)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직전 거래일인 3일에는 약달러와 당국 개입 추정 물량이 맞물리며 30원 넘게 떨어졌지만 기조적 안정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상수지가 4월까지 누적 1000억 달러를 돌파했지만 환율의 고공행진을 막지 못하고 있다. 통상 경상흑자 규모가 확대되면 달러 유입이 늘어 환율이 내려가게 된다.
반도체 등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한국 경제 성장 전망에도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한은은 5월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한은은 이같이 양호한 성장세 등을 고려해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시장에 보냈다.
신현송 총재는 지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준금리를 앞으로 인상함으로써 여러 가지 요소를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흑자폭 확대와 경제 성장 전망 상향 조정,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 등은 환율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율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과 괴리돼 튀는 움직임을 지속하자 외환당국까지 적극 개입에 나섰다.
당국은 강도 높은 구두개입에 이어 미세조정, 14년 만의 외환공동검사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지만, 환율을 잡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올해 1분기 역대 네 번째 규모인 약 136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이마저도 효과를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행진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 기대, 엔화 약세 등의 복합적인 요인들이 해소돼야 고환율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식시장이 급등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계적 리밸런싱에 나서고, 이를 달러로 환전하는 수요가 최근 환율 상승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외국인들은 직전 거래일인 3일에도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2110억원 상당을 팔아치우며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위재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도 리밸런싱 매도가 지속될 경우 상단을 막아줄 눈에 띄는 재료가 없다"며 "3분기에도 환율 상단을 1600원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위 연구원은 "패시브 펀드의 매도는 단순히 코스피 내 외국인 보유 비중이 낮아지거나, 코스피가 큰 폭 하락한다고 종료되지 않는다"며 "코스피가 포함되는 대표적인 패시브 펀드인 MSCI EM 지수 대비 코스피의 상대적 강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코스피가 고점 대비 하락했지만 MSCI EM 지수 대비 상대 수익률은 여전히 높다"고 했다.
다만 외국인들의 매도세와 더불어 환율을 밀어 올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엔화 약세가 일단 한숨 돌린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미국의 6월 비농업 고용 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밑돌며 고용 둔화 우려가 불거지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가 후퇴했다. 40년 만의 최저치까지 떨어졌던 엔화도 당국의 개입 추정 물량에 강세를 보였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하반기 전망으로 유가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 완화와 미국 고용 부진이 연준 인상 베팅을 축소해 약달러로 이어지는 기본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비농업 고용 지표는 약달러 전망 달성을 위한 퍼즐이 맞춰지는 과정이라고 진단한다"고 했다.
민 연구원은 "만약 7월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의 인플레이션 부담 완화와 고용 둔화 언급이 확인된다면 약달러 충격이 원·달러 환율 낙폭 확대를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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