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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 사이, 강동원이 역사를 정면돌파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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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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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격랑 속에서 변명 대신 정공법을 택한 톱스타의 기록

꽃미남을 거론할 때 어김없이 소환되는 이름이 있다. 배우 강동원. 대한민국 여심을 흔든 공공재이자 스크린 속에서 늘 서늘하고도 꼿꼿한 눈빛을 빛내던 이 배우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언제나 화려했다. 완벽한 비율과 조각 같은 외모, 그리고 충무로를 지탱하는 묵직한 티켓 파워까지. 하지만 몇 년 전 이 찬란한 수식어의 그늘을 송두리째 뒤흔든 단어가 터져 나왔다. 바로 친일파 후손이라는 무거운 낙인이었다.

찬란한 스크린 속 수식어 뒤편, 그가 마주해야 했던 역사의 무게와 그늘. 세계일보 자료사진
찬란한 스크린 속 수식어 뒤편, 그가 마주해야 했던 역사의 무게와 그늘.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연예계 공인들의 역사 인식을 향한 검증 잣대가 다시금 매서워지고 있다. 집안의 역사를 마주한 스타들의 대처가 시끄러운 논란을 낳는 가운데, 십수 년 전 강동원이 겪었던 거대한 폭풍과 그 뒷이야기가 다시금 완벽한 대척점으로 소환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과거사의 재탕이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공인이 사회적 과오와 마주했을 때 과연 어떤 태도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선명한 서사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발단은 그가 200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 도중 가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외증조부인 이인환이 일제강점기 당시 굴곡진 행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었다는 점이 2017년 온라인을 통해 재발굴되며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대중의 배신감은 컸고 출연작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며 연예계 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논란 직후 소속사가 관련 게시물을 명예훼손으로 신고하고 게시 중단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은 이를 사실 은폐 시도로 받아들여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논란의 파고 속에서 피할 수 없었던 가계의 진실과 세간의 이목. 근현대사 자료 연출 컷
논란의 파고 속에서 피할 수 없었던 가계의 진실과 세간의 이목. 근현대사 자료 연출 컷

여기서 강동원의 움직임은 대다수 연예인의 위기 대처 방식과 결을 달리했다. 흔한 변명이나 며칠짜리 사과문으로 무마하려 들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 길을 택했다. 역사학자들을 수소문해 찾아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을 시작했고, 조부모의 과오가 곧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항변 뒤로 숨는 대신 공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통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드러낸 가정사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구포 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노원필의 손녀였던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친일파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태어난 어머니와 손자에게로 이어진 피의 역사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외증조부의 미담만을 들으며 자랐다. 외할머니의 이력 때문에 그 일화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는 그의 고백은, 격동의 현대사가 한 개인의 가계 안에서 어떻게 뒤엉켜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과오를 인지한 뒤의 행보는 말뿐이 아니었다. 친일파 청산 관련 단체와 역사 교육 지원 사업에 총 2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익명 조건으로 전달했다. 자신의 이름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면피용 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진심 어린 태도를 고수했다. 대중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냉소도 있었으나,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가십 소비를 넘어섰다.

귀공자라는 오해와 묵묵히 버텨온 치열한 청춘의 시간. 영화 ‘전,란’ 대본리딩 현장 넷플릭스 제공
귀공자라는 오해와 묵묵히 버텨온 치열한 청춘의 시간. 영화 ‘전,란’ 대본리딩 현장 넷플릭스 제공

오해와 진실은 가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중은 오랫동안 그를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귀공자로 기억해 왔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아버지가 대기업 조선소 부사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선입견이 굳어졌지만, 실제 논두렁을 걸어 다니고 연탄을 때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평사원으로 시작해 현장을 돌며 고생했고 외환위기 당시 회사가 휘청이는 아픔도 겪었다. 대학 시절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골프장에서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모델계에 발을 들였을 때도 부당한 대우 속에 빵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생했다.

 

필모그래피 역시 이러한 내면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모델 정점에서 안주하지 않고 배우로 전향해 바닥부터 시작했다. 원톱 주연작보다는 앙상블을 이룬 작품들에서 빛을 발했고, 매년 쉼 없이 카메라 앞에 서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특히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영화 ‘1987’에 출연해 이한열 열사를 연기한 것은,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정면돌파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시간이 흘러 잇따른 역사 인식 논란이 터져 나올 때마다 대중은 십수 년 전 강동원이 보여준 수습 과정을 소환한다. 조용히 지갑을 열어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힘을 보태고, 침묵 대신 공부와 반성을 택했던 그의 방어선은 영민했다기보다 오히려 우직했다.

침묵 대신 선택한 정면돌파, 역사의 상처를 마주한 배우의 단단한 진심. 영화 ‘1987’ 스틸컷
침묵 대신 선택한 정면돌파, 역사의 상처를 마주한 배우의 단단한 진심. 영화 ‘1987’ 스틸컷

외증조부의 그늘은 지울 수 없는 역사이며 후손의 책임 범위에 대한 갑론을박은 지금도 이어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과오를 마주했을 때 핑계를 대거나 숨지 않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사죄와 실천을 보여준 모습은 대중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점이다. 스크린 밖에서 사생활을 철저히 감추던 그가 유독 역사와 사회적 책임 앞에서만큼은 정면으로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 완벽해 보이던 스타가 비로소 인간적인 흠집과 마주하고 그것을 꿰매어 가는 과정은,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왜 여전히 대중의 매서운 검증 속에서도 살아남아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확실한 방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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