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로 희망을 ‘라 스페란차’라고 하는데 오페라 중에는 이 단어를 소리 높여 노래하는 유명한 아리아가 있다. 바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 나오는 ‘그대의 찬 손’이다. ‘라보엠’은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이 모여 사는 프랑스 파리의 한 작은 방에서 시작한다. 그들 방에 있는 난로는 땔감 부족으로 아무런 온기가 없고 성탄전야의 추위를 견디다 못한 시인 로돌포는 자신이 작업하던 원고를 불에 태우며 손을 녹인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역시 비슷한 처지의 젊은 아가씨 미미가 꺼진 초에 촛불을 붙이려고 로돌포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둘 사이의 사랑은 싹트기 시작한다. 첫눈에 반한 로돌포는 미미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노래한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학 |
희망을 북돋워주는 또 다른 명곡은 푸치니의 선배 작곡가 베르디의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이 합창은 이탈리아에서 제2의 국가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서와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유배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이다. 이 합창곡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바빌로니아로 끌려온 히브리인들이 조국을 잃은 슬픔을 노래하는 가사로 돼 있다. 그런데 정작 이 합창곡을 들어보면 슬픔과 탄식보다는 오히려 희망을 갖게 된다. 이 곡은 갈 수 없는 조국을 그리워하는 탄식으로 힘없이 시작한다. 선율은 애국가를 노래하듯이 제창으로 조용히 불린다. 그러다가 중간에 히브리 예언자들의 황금 하프 소리가 다시 울리기를 기대하는 부분부터 합창은 화음을 이룬다. 이때부터 음악은 힘차게 진행하고 마지막 부분에 다시 유니슨으로 제창하며 선율은 더 큰 힘을 받는다.
이 곡의 마지막 가사에서 강제이주를 당한 히브리인들이 주님께 이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희망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조국은 멸망하고 타국에 종으로 끌려온 히브리인들은 절망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붙들고 싶은 것이 희망이었다. 베르디는 절망스러운 상황을 표현하는 가사 속에서도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힘없이 시작한 선율을 점점 힘차게 이끌어 나간다. 이 곡을 완성하기 2년 전에 베르디는 어린 두 아이를 잃었고 1년 전에는 사랑하는 젊은 아내마저 죽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 절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작곡가는 다시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르디는 마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서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주인공이었다. 오페라 ‘나부코’를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젊은이에게 희망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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