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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엔 큰 더듬이·작은 더듬이 각 한쌍 / 굼뜨지만 꾸준한 느림뱅이 닮고싶어
하도 가물어 농민의 마음이 몹시 타들어간다. 힘에 부칠 정도로 물을 날라 상추밭, 배추밭에 뿌려줘 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꼴로 농작물을 감질나게 할 뿐이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옛말이 백번 옳다.

그런데 몇 골 안 되는 배추밭에서 지난해 태어난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달팽이 녀석이 잎사귀를 갉아먹고 있다. 참 검질긴 생물들이다. 느림보달팽이의 어눌한 품새에다 둥그스름한 됨됨이 탓에 퍽 정답고 저절로 정감이 간다. 사실 필자는 그 많은 생물 중에서 산들에 나는 달팽이를 전공한지라 ‘달팽이박사’라 불린다.

달팽이는 몸에 골격이 없고 유연한 연체동물 중 배의 근육으로 움직이는 배발동물(복족류)로 아마도 밤하늘에 비친 둥근 ‘달’을 닮았고, 땅바닥에 지치는 팽글팽글 돌아가는 ‘팽이’와 흡사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리라. 달팽이의 한자어는 ‘와우(蝸牛)’인데 와(蝸)는 달팽이, 우(‘牛)는 소로 행동이 소처럼 느릿느릿함을 뜻한다.

달팽이는 신기하게도 뿔이 넷이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고 ‘뿔이 있는 자는 이가 없다’ 하듯이 한 사람이 모든 복을 다 갖지 못한다. 아무튼 달팽이는 머리 위에 한 쌍의 큰더듬이(대촉각), 그 아래에 한 쌍의 작은더듬이(소촉각)가 있다.

추켜세운 더듬이 넷이 제 맘대로 이리저리 엇갈려가며 까닥거리는 것을 보고 있을라치면 괴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사람들은 네 더듬이들이 끄덕거리면서 서로 다투는 것으로 알고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 했다. 장자 칙양편에 나오는 글로 ‘달팽이 뿔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말인데,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집안끼리 싸움박질함을 이른다.

뿔이 넷이 난 동물. 곧추세워 간들거리는 큰더듬이 끝은 좀 부풀어지면서 그 안에 눈이 들어 있지만 오직 명암만 구별할 따름이다. 그리고 아래의 작은더듬이는 늘 밑으로 구부려 냄새·기온·바람·먹이·천적을 알아내려고 쉼 없이 설레설레 흔든다. 소촉각이 일을 도맡아 다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달팽이 눈을 살짝 건드려 보면 얼김에 눈알이 더듬이 안으로 또르르 말려 들어갔다가 이내 곧 쑥 밀려나온다. 객쩍고 머쓱한 일을 어디 달팽이만 당하겠는가. 그래서 민망스럽거나 겸연쩍은 일에 처했을 때 ‘달팽이 눈이 됐다’고 한다.

알고 보면 달팽이는 여린 옥수수나 배추, 밀감 순을 뜯어먹는 해충이다. 그리고 달팽이는 다른 무척추동물처럼 암수 한몸이면서 꼭 딴 놈과 짝짓기를 해 정자를 바꾼다. 제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좋지 않는 자식이 난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또한 식물이 제꽃가루받이(자가수분)를 꺼리는 것도 같은 연유다. 하여 우리는 영리하기 짝이 없는 이들 동식물에서 19세기 후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던 우생학(優生學·eugenics)을 배웠다.

흙을 발로 파 20∼30개의 알을 구덩이에 낳아 덮어두면 2∼3주쯤 어엿한 새끼달팽이가 나온다. 달팽이 새끼들은 얇디얇은 껍질을 둘러쓰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몸집과 집을 더디지만 차근차근 늘여간다. 달팽이는 한평생 제 집을 짊어지고 다니기에 이사하지 않아도 되고, 주택부금을 붓지 않아서 좋다. 두어라. 굼뜨지만 꾸준한 느림뱅이 달팽이를 닮으리라. ‘달팽이크림’으로 이름 날리는 내 달팽이를 말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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