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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깊고 맑은 산중에 흐르는 우암의 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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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28 20:00:00 수정 : 2017-06-28 19: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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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한 맺힌 충북 괴산 화양구곡
선조의 상상력과 관찰력은 분명 뛰어났다. 전국 각지에 있는 기묘한 바위 등에 다양한 이름을 부여했다. 동물이나 사람을 닮았으면 그 이름을, 닮지 않았더라도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였다. 지금 그 바위 등을 볼 때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공감이 잘 안 될 때도 있다. 시간이 흘러 형태가 달라져 이름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고, 좀 과하게 의미를 부여한 경우도 있다. 공감이 가든 가지 않든, 그래도 이름이 붙여진 곳은 풍광이 빼어난 곳이란 공통점이 있다. 우리 선조가 허튼 곳에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이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중 충북 괴산 화양구곡은 우암 송시열과 연관 깊다. 화양구곡의 모든 것에 송시열이 이름을 붙였고, 이곳의 서원 역시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다.
우암 송시열의 위패 등을 모신 화양서원.

송시열은 조선시대 치욕 중 하나인 병자호란을 겪으며 북벌 의지를 불태운다.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봉림대군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은 봉림대군이 왕(효종)으로 즉위하자 조선에 치욕을 안기고, 명나라와 대결하던 청나라를 치겠다는 뜻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북벌 계획은 반대파의 밀고로 청나라에 알려져 실패한다. 결국 때를 기다리던 그는 다시 관직에 나선 뒤 북벌을 꿈꿨으나 1659년 북벌의 후원자였던 효종이 숨을 거두자, 북벌 실패의 한을 가슴에 묻은 채 이듬해 화양계곡으로 내려와 칩거에 들어간다.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주자에 자신을 비유했던 송시열은 주자가 극찬했던 무이구곡과 같은 절경이라는 의미로 화양계곡 아홉 곳에 이름을 붙인 후 화양구곡으로 불렀다.
북벌 실패의 한을 가슴에 묻은 채 칩거에 들어간 우암 송시열은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주자가 극찬했던 무이구곡과 같은 절경이라는 의미로 화양계곡 아홉 곳에 이름을 붙인 후 화양구곡으로 불렀다.

화양계곡은 속리산 국립공원 내 낙영산에서 뻗어 내려온 계곡이다. 이맘때 화양구곡은 넓게 펼쳐진 바위, 우뚝 솟은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잘 닦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주위에 펼쳐진 경치를 품을 수 있는 곳이다. 화양구곡의 아홉 번째 풍광까지 본 후 돌아오는 데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
괴산 화양구곡의 2곡인 운영담에선 거울처럼 맑은 물에 구름과 기암이 반사된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객이 화양구곡 중 처음 만나는 곳은 2곡인 운영담(雲影潭)이다. 거울처럼 맑은 물에 구름과 기암이 반사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계곡물이 폭이 넓은 이곳에서부터 속도가 느려진다. 2곡부터 만나는 것은 1곡인 경천벽(擎天壁)이 주차장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5분가량 걸어 내려가야 가파르게 솟은 바위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친 듯한 절경을 볼 수 있다. 2곡을 지나면 널찍한 바위가 눈에 띈다. 화양계곡에 터를 잡은 송시열이 죽은 효종을 기리며 매일 새벽, 효종 제삿날에 엎드려 곡을 했다는 3곡 ‘읍궁암(泣弓岩)’이다.
3곡 읍궁암은 송시열이 죽은 효종을 기리며 매일 새벽, 효종 제삿날에 엎드려 곡을 한 곳이다.

읍궁암 맞은편에는 송시열의 문하생들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한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두고 제사를 지낸 만동묘와 송시열 위패 등을 모신 화양서원이 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했을 때 가장 먼저 훼철된 곳 중 하나다. 권력을 잡기 전이었던 대원군 이하응이 초라한 행색으로 이 서원에 들어가려 하자 유생들에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4곡인 금사담은 화양구곡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금사담엔 작은 정자가 서있다. 송시열이 금사담의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 위에 한 칸짜리 방인 암서재(巖棲齊)를 세운 후 책을 읽고 시를 읊은 곳이다. 기암절벽과 노송, 정자,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지나가던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4곡 금사담은 충북 괴산 화양구곡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다. 송시열이 금사담의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 위에 세운 한 칸짜리 방인 암서재(巖棲齊)애서 책을 읽고 시를 읊었다. 기암절벽과 노송, 정자,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지나가던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금사담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바위가 쌓여있고, 별 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의 5곡 첨성대(瞻星臺)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평한 바위가 첩첩이 겹쳐져 있고 그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한다.

6곡인 능운대(凌雲臺)는 길가에 우뚝 솟아있다. 큰 바위가 마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듯 우뚝하다고 하여 이름 붙었다. 이어 나타나는 7곡 와룡암(臥龍巖)은 굴곡진 바위가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용이 누워있는 듯 한 모양새다. 8곡인 학소대(鶴巢臺)는 계곡에 우뚝 솟은 바위벽이다. 벼랑 끝 소나무에서 학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금사담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바위가 쌓여있고, 별 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의 5곡 첨성대(瞻星臺)가 모습을 드러낸다.
6곡 능운대는 다른 명소와 달리 길가에 우뚝 솟아있다. 큰 바위가 마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듯 우뚝하다고 하여 이름 붙었다.
7곡 와룡암(臥龍巖)은 굴곡진 바위가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용이 누워있는 듯 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학소대(鶴巢臺)는 계곡에 우뚝 솟은 바위벽으로 8곡이다. 벼랑 끝 소나무에서 학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화양구곡의 마지막 절경인 파천(巴天)은 계곡에 널찍한 반석이 펼쳐져 있는데, 신선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란 전설을 지니고 있다.

9곡까지는 오르막 길을 오르다 다시 계곡 쪽으로 내려와야 해 이전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린다. 계곡에 이르면 협곡에 널찍한 반석이 펼쳐지고, 그 위로 물살이 굽이쳐 흐르는 화양구곡의 마지막 절경인 파천(巴天)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에 널찍한 반석이 펼쳐져 있는데, 신선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란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맘때 화양구곡은 한창 푸름이 빛을 발하지만 한때다. 푸름이 사라지더라도 바위에 새겨진 송시열의 한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괴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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